그집 문을 열자 무서운 진실이...
그집 문을 열자 무서운 진실이...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4.06.25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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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우의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북데일리] ‘제법 큰 라일락 나무가 하나 있었다. 1984년, 일곱 살 때 살던 집 얘기다. 특별하다 싶은 건 그거 하나뿐이었다. 그 시절 집장수들이 지어올린 다가구 주택이란 게 워낙 비슷비슷했으니까. 하늘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 왼편에 우뚝 서 있던 나무. 봄이면 가지마다 하연 꽃이 어지럽게 피어, 빈속에 맡으면 알딸딸할 만큼 강한 향기를 뿜어내다가 여름이 오기 전에 졌다.’ 37쪽

 짙은 라일락 향기가 전해질 것 같다. 문 앞에 선 소녀는 무엇을 본 것일까? 송시우의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시공사. 2014)는 스산한 분위기로 독자를 압도한다.

 소설은 대중문화평론가로 유명해진 수빈이 유년 시절의 기억을 담은 칼럼에서 시작한다. 수빈은 29년 전 ‘라일락 하우스’라 불리던 다가구 주택에서 살았던 이야기를 연재한다. 공동 화장실, 연탄아궁이, 단칸방, 부업 등 80년대 서울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는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목숨을 잃은 대학생 영달 오빠의 이야기도 함께 말이다. 그리고 추억을 공유할 사람들을 찾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블로그와 트윗에 올린 글을 보고 그때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연락을 해온다.

 수빈의 가족을 비롯해 신혼부부, 과일장수 부부, 대학생, 공장에 다니던 처녀들, 반가움과 동시에 무언가 감추고 두려워하는 모습이었다. 과거 힘들게 살았던 모습이 아닌 식당 주인, 미용실 원장, 캐나다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중년이었다. 일곱 살 소녀의 기억과 어른들의 기억은 달랐다. 연탄가스 중독사건고, 계돈을 들고 야반도주한 새댁에 대한 기억은 모두가 달랐다.

 누군가는 대학생인 줄 알았던 영달 오빠는 그냥 스물둘의 청년이었고, 가스 중독이 아니라 타살이라고 말한다. 그런가 하면 예뻤던 새댁 아줌마는 계돈 때문이 아니라 바람난 남편을 찾으러 떠났다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연락이 닿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수빈은 아련한 추억을 불러오는 글에 대한 반응이 높아지자 점점 더 그 시절 라일락 하우스에서 일어난 일들에 흥미를 갖는다. 그런데 그곳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우돌은 수빈에게 화를 낸다. 수빈이 이사를 가면서 헤어진 우돌은 3년 전 재회하여 연인이 되었다. 과일장수 아들이었던 우돌은 수빈이 동생 우영의 이야기를 쓴 글을 보자 불같이 화를 낸다.

 수빈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뇌종양에 걸린 우영이 수술비가 없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죽었다는 사실 그 이면에 숨겨진 비밀 말이다. 새댁의 야반도주와 영달 오빠의 죽음과 관련이 있었다. 당시 그 사건을 담당하며 한 동네에 살았던 경찰 영두도 자살이 아닌 타살을 언급한다. 우돌은 기억 속에 묻어 둔 사건의 진실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수빈은 진실이 궁금하다. 영두와 함께 그 동네를 방문한다. 모든 게 달라졌지만 구멍가게는 그대로였다. 계주였던 할머니는 다가구 주택을 기억하고 새댁 남편이 누가 바람을 피웠는지 들려준다. 그리운 시절이라고 믿었던 1984년 라일락 하우스엔 저마다의 욕망이 가득했다. 누군가를 질투하고, 유린하고, 방치했다.

 ‘근사한 일상 미스터리 소설이다. TV 드라마를 보는 듯 생동감 있는 인물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높이며 독자에게 다가온다. 오래된 사진첩의 낯익은 얼굴이 낯설어지게 만드는 묘미의 소설. 누구에게나 미스터리 하나쯤은 있기 마련 아니겠는가.’ - 이다혜, <씨네 21> 기자

 이 소감처럼 기묘한 애틋함을 불러오는 소설이다. 1980년 서울을 고스란히 묘사하여 추억에 빠지게 만든다. 어떤 모습으로 그 시절을 살았든 누구나 한 번쯤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 여름 추억과 스릴을 안겨줄 책으로 충분하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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