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 글쓰기냐 죽음이냐
릴케, 글쓰기냐 죽음이냐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6.16 2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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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인 지망생에게 보낸 편지

[북데일리]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소울메이트. 2014)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한 시인 지망생에게 보낸 편지 열 통을 모아 출간한 책이다. 릴케는 1902년에서 1908년까지 7년에 걸쳐 이탈리아ㆍ프랑스ㆍ스웨덴 등지를 여행하면서 청년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편지에서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 신, 예술, 사랑과 성, 인생과 죽음, 고독에 대해 조언을 한다.

릴케는 장교로 만들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육군소년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 육군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그곳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퇴를 했다. 육군사관학교에 다니던 카푸스는 스무 살도 채 안 된 청년으로, 예전의 릴케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 맞지 않는 직업의 문턱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해서 자신이 지은 시에 편지까지 동봉해 릴케에게 보내고 몇 주일 후 답장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둘의 규칙적인 편지 왕래가 시작된다.

먼저 릴케는 1903년에 파리에서 쓴 ‘첫 번째 편지’에서 시인으로서의 길을 고민하는 카푸스에게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간절한지 살펴보라고 얘기한다.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당신의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뿌리를 뻗어 나오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글쓰기를 그만두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 있는지 자문해보십시오. 조용한 밤중에 이렇게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말입니다. ‘나는 반드시 글을 써야만 하는가?’ 그러고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대답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만일 마음속 대답이 그렇다고 하거나, 그 진지한 물음에 대해 글을 쓰지 않으면 차라리 죽을 수밖에 없다는 확고하고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있다면, 당신의 생애를 그 필연에 따라 만들어 가십시오. 하찮고 쓸데없는 순간 하나하나까지 당신의 모든 순간이 글을 쓰고자 하는 충동의 표식이자 증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p.18~p.19)

또한 1903년 12월 23일 로마에서 보낸 여섯 번째 편지에서는 고독에 대해 쓴다. 그는 성탄절 축제 한가운데서 고독을 견디기 더 힘들겠지만 그것을 그냥 즐기라고 한다. 자기 자신의 고독 속으로 파고든 뒤에야 자신의 독자적인 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독이란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크고도 견디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이들에게 고독한 시간이 오게 마련이지요. 비록 진부한 싸구려 연대감이라고 해도 고독을 그 연대감과 바꾸고 싶은 때도 있고, 형편없는 사람도 좋고 그 누구라도 좋으니 그들과 겉치레라도 조금이나마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시간들이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자라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 슬프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있어야 될 것은 고독 하나뿐이지요. 크고도 내적인 고독 말입니다.” (p.79~p.81)

그것을 위해 자기 자신 속으로 들어가 몇 시간이고 누구와도 만나지 않을 수 있어야만 한다며,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 이와 함께 그는 사랑한다는 것 또한 좋은 일이라고 한다.

“인간과 인간이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것, 즉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그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은 그저 준비 과정일 뿐입니다. (중략) (젊은이들은) 사랑을 배워야만 하지요. 혼신을 다해, 모든 힘을 다해, 고독하고 걱정하며 위로 치닫는 마음으로 그들은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배우는 시간은 언제나 길고도 폐쇄적인 기간이기에, 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것이고, 고독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승화되고 심화된 홀로됨이지요.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며 헌신해서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 (p.97~p.99)

릴케에 따르면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과 완성되지 않은 사람, 정리되지 못한 사람과의 하나 됨은 의미가 없다. 사랑은 개개인이 성숙해지고, 자기 안에서 그 무언가가 되고, 세계가 되는, 자기 자체로서 타인을 위해 하나의 세계가 되는 숭고한 계기다. 릴케의 조언은 한결같다. 밤낮으로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이 책은 릴케의 사후 1929년에 출간됐다. 릴케의 사유가 유려한 문체로 쓰여 있어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번역되었다. 그의 편지는 방황하는 젊은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도 유용한 조언들이다. 삶에 지쳐 힘들 때 그의 편지 한 통 씩을 펼쳐 읽으면 깊은 내면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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