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가 꼽은 '내 인생의 소설'
명사가 꼽은 '내 인생의 소설'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4.06.16 2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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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부터 <설국>까지 50편

[북데일리] “내 인생의 책 한 권! 이런 문구를 접하면 나는 아직도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나에게도 내 삶을 뒤흔든 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한 권의 책이 한 인간에게 던지는 놀랍고도 어마어마한 마력을 경험했으니까. 좋은 책은 ‘어떤 충격’으로 한 사람에게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드는 책. 최근 10년 동안 내가 읽은 소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정유정의 <7년의 밤>이다.” - 김자연 (아동문학가)

<만약 당신이 내게 소설을 묻는다면>(소라주. 2014)은 전국의 대학교수, 시인, 작가 50명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 소설을 소개한 책이다. ‘소설에서 작가를 발견하다’, ‘이 소설을 말한다’, ‘나는 이렇게 읽었다’ 등 총 5부에서 한국과 외국의 고전과 근·현대 작품을 설명한다.

책에 소개되는 한국소설로는 김승옥의 <무진기행>, 최명희의 <혼불>, 김유정의 <만무방> 등이다. 외국소설은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카슨 매컬러의 <슬픈 카페의 노래> 등이 등장한다.

먼저 소설가 김병용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얽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소설은 작가가 14년 동안 개작을 거듭했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야스나리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설국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기차가 신호소(信號所)에 멈췄다.

<설국>의 첫 세 문장이 내겐 일상적인 삶의 경험을 단순히 기술해 놓은 것으로만 보였던 거다. (중략) 당시까지 내 독서법이란 건 어떤 소설을 내 나이나 처지에 맞춰 관심 대목만 중점적으로 읽는 ‘덜 읽기 (under-reading)'의 전형이라 할 것이다. (중략) 내 멋대로 ’이 소설은 일본 촌구석이 배경인데 좀 세련되게 쓰였다는 게 인상적인 소설‘이라고 정리해버렸다.” (p.167~p.169)

하지만 소설가는 일본을 여행하면서 혼자 있게 된 순간, <설국>의 세 문장을 떠올리게 됐고, 갑자기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에 다른 말들이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 설국이었다. 별다른 삶의 지향 없이 떠도는 한 사내가 있다. 그가 자신을 둘러싼 낯익은 환경을 벗어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나는 지금 어디로, 왜 가는 것인지, 스스로 물어보면서……. 질문의 깊이만큼 캄캄한 터널 속으로 쑥 빨려 들어간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그리고 갑자기 환해진다.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도 전에 기차는 갑자기 낯설기 짝이 없는, 환한 눈의 나라로 들어선 것이다. (중략) 기차가 신호소에 멈췄다. 지금 여기, 갑자기 낯선 곳에……” (p.173)

그는 그 순간 ‘설국’이 눈이 내리면 ‘단단히 얼어붙어 설빙으로 반짝이다 언젠가는 녹아 흘러내려 자취 없는 것들이 잠시 머무는 곳, 유한하고 유동적인 삶의 주소’, 그걸 말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된다. 바로 백석 시인이 그려낸 ‘흰 바람벽’과 같은 곳! 실존하지만 영속하지 않는 삶의 국면, 삶이 유동적인 것이라는 사실의 불변성.

<설국>은 소설가에게 “‘문학’ 혹은 ‘소설’을 향해 열린 첫 터널이었다. 처음에는 사물로서 ‘책’이었다가 독해해야 할 ‘텍스트’로, 그리고 ‘언어도단’ 너머 해석의 대상인 ‘콘텍스트’로, 그리고 마침내는 내가 통과해온 내 삶을 이해하는 거울로서 이 작품은 내 젊은 시절을 함께 해왔다”고 전한다.

또한 소설가 송하춘은 최인훈의 <광장>을 소개한다. “반세기를 넘는 상황이 그대로 적체현상을 보이고 있는 답답함도 답답함이려니와, 반세기 전에 이미 오늘의 상황까지를 끌어다 댈 수 있었던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고 평한다.

그 외 책에 실린 글들은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버무려서 개성이 넘친다. 책과 관련된 에세이를 읽은 느낌도 든다. 책에 소개된 책들을 필독서 리스트에 올려도 좋겠다. 이 책에 대한 소설가 박범신의 추천사로 마무리한다.

“소설과 인생을 읽는 다양한 눈을 보는 건 참 즐겁다! 사람과 사람 사이엔 섬이 있을지 모르지만,
좋은 문학 좋은 독자 사이엔 섬이 없다. 이 책은 소설이 너른 소통의 길이라는 걸 새삼 확인시켜 준다.” <정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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