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성리학자 녹문鹿門 임성주任聖周의 누이동생 ‘임윤지당’은 조선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학문에 전념했던 인물이다. 그녀는 <윤지당유고>라는 유고집에 성리학 논문과 역대 인물들에 대한 논평, 역사와 정치에 관한 글을 남겼다.
“남성 위주의 세상에서 임윤지당은 여성들도 학문과 수양을 통해 성인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성인이나 일반 사람이 본래 같은 성품을 타고난 것이며, 남자와 여자도 타고난 본성은 차별이 없다고 주장했다. 본인 스스로 그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평생 학문을 통한 수양을 그치지 않았으며 그 결과물로 문집을 남겼던 것이다.” (p.34)
또한 조선 남성들이 집필한 <열녀전>의 여성들은 남편이 어떠한 잘못을 지었든 믿고 따르며,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은장도를 차고 다니고, 남편이 죽으면 망설임 없이 따라 죽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김삼의당’이 <혼례를 올린 날 이야기>라는 글에 쓴 첫날밤 두 부부의 대화를 보면 그와는 사뭇 다르다.
“명나라 사정옥謝貞玉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부부의 도는 오륜을 겸하는 것이라고. 아비에게는 간쟁하는 아들이 있고, 임금에게는 충간하는 신하가 있습니다. 형제는 올바름으로 서로 이끌고 친구는 착한 일로 서로 권면한다 하였으니 어찌 부부 사이에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내가 당신을 거스르지 않겠다함이 어찌 당신의 잘못도 따르겠다는 말이겠습니까.” (p.47)
김삼의당은 남편 하립과 같은 마을에서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났다. 둘은 신기한 인연으로 부부가 되었고, 남편이 공부를 위해 긴 이별을 했을 때도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의지를 다졌다. 산사에서 공부하던 남편이 아내를 그리워하거나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면 고사 속의 인물을 들먹이며 나약해진 남편을 단호하게 나무랐다. 결국 그들은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행복을 누리다 생을 마쳤다.
책에는 “여자로 태어났다고 장차 방안 깊숙이 문을 닫고 경법만을 지키며 사는 것이 옳은가. 한미한 집안에 났다고 분수를 지키면서 이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옳은가”라며 되묻고 자신만의 길을 떠난 김금원, ‘제주도 여자는 육지에 오를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금강산에 오른 김만덕, 한 남자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산 황진이 등이 나온다. 조선시대 자신들을 억압하는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그에 맞서 나간 그들의 행보는 놀랍기만 하다. 이와 함께 정의롭지 못한 사회와 맞닥뜨렸을 때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바로 잡으려한 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는 복수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도 알 수 있다.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임유경. 그녀가 사료에서 찾아낸 조선의 여성 서른여덟 명의 삶은 현재의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비록 짧은 글들이지만 책을 통해 잊혀졌던 여성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모두 시대를 잘못타고 났음에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다. <정미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