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로진 "노예로 살던 내가 갈매기 되어..."
명로진 "노예로 살던 내가 갈매기 되어..."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3.08.06 1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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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론리 데이즈>, 삶을 바꾸는 여행의 기록

[북데일리] “여행의 정수는 사람이 된다. 여행지의 쾌적함이나 유적의 거대함, 자연의 웅장함 같은 것들은 두 번째 또는 세 번째 목록에 포함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광도 소녀의 미소를 당하지 못하고, 아무리 훌륭한 건축도 소년의 수줍음을 이기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는 친절이가고 법정 스님은 말했다. 여행은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 친절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이번 생에서 비로소 우리의 여행은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 (p.74)

‘인디라이터’ 명로진이 <해피 론리 데이즈>(뮤진트리. 2013)에서 이야기하는 여행에 대한 단상이다. 이 책에서 그는 자유롭지만 외로운, 그러면서도 행복한 혼자만의 여행에서 얻은 생각을 들려준다.

“이 책은 노예로 살던 내가 잠깐씩 자유인이었던 시기의 기억을 모은 것이다. 북극권에서 남아공까지, 쿠바에서 에스토니아까지,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랑하고 고민하며 웃고 울었던 추억들을 되새겼다. 노마드였을 때, 나는 채찍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리고 책을 쓰는 동안의 나는,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다니는 한 마리의 갈매기였다. 버려진 생선이나 누군가가 던져주는 새우깡 따위는 거들떠보지 않는, 온전히 자유로운 존재일 수 있었다.” (p.13)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여행자로서 길에서 보고 느낀 세계를 보여준다. 2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경이로운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3부는 행복에 관한 깨달음이고, 4부에서는 혼자 떠난 여행을 통해 마침내 도달한 사유를 담았다.

리비아 사막을 여행하면서 만난 투아레그(Tuareg) 족. 오랫동안 유목민으로 살아온 그들은 ‘한 줌의 물로 일주일을 버티고, 별을 보고 방향을 알아내며, 냄새만으로 오아시스를 찾는다.‘ 그는 한 노인으로부터 사막 한가운데서 저녁 식사를 대접 받으면서 한쪽 구석에서 식사를 하는 여인을 보게 된다. 그녀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천을 두르고 둥그런 두 눈만 내밀어 세상을 더듬고 있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그녀는 다가와 말없이 뭔가를 내밀었다. 알록달록한 모자였다. 그게 무슨 뜻인지 그는 바로 알 수 있었고, 그 기념품을 샀다. 둘은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지만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우리는 언제부터 눈으로 하는 말을 잊고 살아온 걸까? 살면서 그리 많은 말이 필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입은 곧잘 거짓을 말하고 몸은 위선의 편으로 달려가곤 하지만, 눈은 진실하다. 우리가 우리의 눈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그윽해질 수도 있을 텐데. 순수한 눈에 비친 내 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내면의 정수를 알 수 있을 텐데.“ (p.24)

도쿄 긴자를 여행했을 때 저자는 한 라이브 카페서 중년 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첫 곳이 끝나자 가수는 자신에 대한 소개말을 장황하게 말한다. 노래보다 더 긴 그의 자화자찬을 들으며, 자신도 그간 프로필의 리스트를 늘리기 위해 애쓰던 모습이 떠올라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

“김훈은 프로필을 길게 쓰지 않는다. 그냥 작가다. 김기덕은 자신이 연출한 작품 목록을 다른 이들 앞에서 읊지 않는다. 그냥 영화감독이다. 얼마 전에 책을 낸 박민규는 프로필에 얄밉게도 딱 한마디만 썼다. 박민규, 소설가. (중략) 단 하나의 프로필을 가진 사람은 행복하다.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냐?”라고 물었을 때 “나는 목수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나는 농부다”, “나는 산악인이다”, “ 나는 선생이다”, “나는 요리사다”, “나는 네일 아티스트다”, “나는 운전사다”라고 한 줄로 대답하는 사람은. 이제는 나도 하나의 프로필을 위해 달려가려 한다. 직함의 나열이 아닌, 리스트를 줄이는 삶을 살아가려 한다. 그대는 무얼 하는 사람인가?“ (p.194~p.195)

책은 여행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여행을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글쓰기 관련 책을 집필한 경력이 있는 저자의 여행기는 편안하게 술술 읽히면서도 훈훈하다. 에필로그에서 그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같이 빛나자.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대를 만났다는 것이, 오늘은 눈물 나도록 고맙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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