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다시읽기] 그남자네 집
[베스트셀러 다시읽기] 그남자네 집
  • 북데일리
  • 승인 2007.02.2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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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집. 단순히 살아가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집은 곧 삶의 터전이다. 노곤한 몸을 뉘일 자리이기도 하지만 지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쉼터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항상 편안함과 안심의 표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욕망으로 채워지고, 욕망을 채워주기도 하며 덩치를 부풀린 속 빈 공갈빵이 되기도 한다. <그 남자네 집>(현대문학. 2004)은 여러 의미가 얽히고설킨 그녀와 그 남자의 집에 이어진 길을 좇고 있다.

크지는 않지만 반듯했던 집은 전쟁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하나 둘씩 쓰러진다. 가족의 테두리가 지켜주던 안식은 일순간 사라지고 쓰라린 상처만 되새김질 하게하는 흉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작가는 그 전쟁의 비극을 이념의 대립 같은 거창한 이유와 상관없는 안감내의 보통 사람들의 상처로 그려내고 있다. 식솔과 이웃을 잃고 살아갈 길 자체가 흔들린 그네들의 비정함을 악착같이 살아가는 개인의 삶에 녹여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말이다.

전쟁은 막연히 국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소시민들이 느끼는, 몸 붙일 곳이 없는 현실에서 오는 상실감이다. 때문에 자신의 삶의 목표와는 하등 상관없는 전쟁의 진행 상황에 쫓겨 북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남으로 또, 그 반대로 떠돌아야 했던 그들에게 정착할 집은 그 의미가 클 수밖에 없다.

‘나는 작아도 좋으니까 하자 없이 탄탄하고 안전한 집에서 알콩달콩 새끼 까고 살고 싶었다.’

이 말이 나타내는 것처럼 ‘나’는 전쟁으로 인해 자신의 꿈과 ‘그 남자’를 가슴에 묻고 평온한 안식을 찾아 가정을 꾸린다. 바로 자신의 집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머니. 작가는 ‘나’와 ‘그 남자’의 어머니, 남편의 어머니, 춘희의 어머니 등 그 시대 어머니의 이야기를 집요하게 끄집어낸다. 전쟁은 총부리를 겨누고 전장을 뛰어다니는 남자들의 몫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군화와 총으로 대변되는 전쟁의 이미지가 남성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야 말로 총을 든 아버지보다 강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전쟁 앞에서 지극히 현실적이어야만 했던 그녀들이었기에 말이다.

소설 속에 그려진 어머니는 먹고 살 일에 대한 집착에 빠진, 아름다운 찬사와는 거리가 먼 존재이다. 고지식한 사고방식으로 인해 자식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하니 말이다. 광주리를 임하고 하루 끼니를 위해 거리로 나선 그녀들은 자신의 삶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이웃을 트집 잡기도 한다. 그 시절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투영된 어머니의 모습에서 눈을 감아버리고 싶은 현실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미군부대에서 일하다 결국 양공주의 삶을 사는 춘희,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감사하다며 굽은 허리에 커다란 광주리를 이고 시장 통으로 나서는 그 남자의 어머니, 추억을 버리고 집을 헐어 하숙을 치는 ‘나’의 어머니. 살기 위해 냉정한 현실의 길을 가야만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방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다 결국 도망치고 만다. 그 시절의 어머니는 그렇게 가슴 아프지만, 이유 모를 혐오감을 느끼게 한다.

밥상. 전쟁을 겪고 난 소시민들에게 이념은 밥상에 있다. 오로지 먹는 일에만 온 신경을 쏟는 어머니와 남편, 그 삶에서 그녀에게 잠시나마 허락된 일탈은 동대문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자유를 느끼는 것과 ‘현보’를 만나는 일이다. 화자가 택한 결혼은 사랑의 결실이 아닌 도망치고 싶은 현실에서의 돌파구였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이내 무너지고 남편에 대한 실망과 시어머니에 대한 혐오만 떠안는다. 더불어 그녀는 자신의 비겁하고 방관자적인 태도에 역시 독설을 쏟아낸다. 때문에 자신의 삶이 피폐해져가는 이유는 전쟁에 있으며 누구도 거기서 꺼내줄 수 없다는 그녀의 항변은 이기적이지만 솔직하다.

자신과 어머니의 자존심이었던 명문대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세상에 마치 단 둘 뿐인 것처럼 느꼈던 첫사랑마저 잊어야 했던 그녀. 줄줄이 딸린 동생들의 입을 굶기지 않기 위해 몸을 팔고 그에 대한 죄의식조차 가지지 못했던 춘희. 그녀들은 자신이 직접 선택하고 책임지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눈앞의 밥상만을 좇은 것이다. 아마도 빼앗긴 삶에 대한 한을 담아 내뱉은 춘희의 ‘엠병’이라는 욕설과 ‘나’의 독설은 자신의 삶이 부정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소설은 배경이 되는 한국전쟁, 일사후퇴, 월남전, 기지촌, 베이비붐, 아메리칸드림 등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개인의 일상을 과장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극적인 감동 없이 그 시절의 고단한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마치 연애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집필했다는 작가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은 고단한 삶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사랑이라는 단어와는 이질적인 느낌을 갖게 하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결국 사랑과 애환이 아닐까싶다. ‘나’에서 ‘그 남자’ 현보로, 현보에서 그의 어머니로, 그들 속에서 얽혀있는 감정의 고리는 감당하기 버거운 고통에 가려져 있지만 분명 사랑이다.

문학과 현실의 삶. 결국 작가가 사랑한 것은 막연한 그리움의 문학이었고, 그녀가 문학 속에서 그리워한 것은 바로 그때 눈 돌려버린 삶이 아닐까.

[이광준 시민기자 yakwang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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