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꽃' 한 남자의 절망
'종이 꽃' 한 남자의 절망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3.06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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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와 부재' 선명한 질문 던지는 소설

[북데일리] <추천> ‘나’는 어디서 와서 ‘나’로 살아가는 것일까.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고 답을 찾으려 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정답도 없거니와 존재라는 명제만을 생각할 수 없는 게 생이다. 만약, 존재에만 올인할 수 있다면 답 근처에 다가갈 수 있을까? 외젠이오네스코의 <외로운 남자>(2010. 문학동네) 화자처럼 말이다.

 주인공은 친척이 남긴 유산으로 직장을 그만둔다. 누가 봐도 운이 좋은 행복한 남자다. 작고 낡은 호텔을 떠나 자신만의 아파트를 장만하고 가정부를 두고 홀가분한 생활을 시작한다. 식당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거리를 거닐며 주변 인물들을 관찰한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일만 해도 되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삶이니 그는 충분히 만족스럽다.

 하지만 혼자 깨어나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사는 일은 고독하다. 거기다 건물은 무너지고 폭동이 일어나고 잔혹한 살인이 벌어지는 세상은 그가 불행할 이유는 충분하다. 이 끔찍한 세상을 흉보고 비판하고 술잔을 나눌 누군가를 원하지만 그는 찾지 못한다.

 단골 식당 여 종업원과 사랑을 나누고 함께 시간을 보내보지만 이별로 이어진다. 그의 불안과 환멸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남들의 눈에 그는 그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절대 외롭거나 불쌍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절대적으로 외로운 사람이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거대한 우주에 대한 욕망을 가진 이였다. 평범한 삶이 그에게는 너무도 무겁고 절망적인 것이었다.

 ‘모든 것이 존재하면서도 부재하며, 단단하고 투박하면서도 한없이 허약한 듯한 이 느낌이 야릇하다. 이 세계가 진정 존재하는 것일까? 조금만 허점이 있어도 모든 것이 수천 조각으로 부서질 수 있다. 내 몸이 조화의 눈부신 잎사귀의 일부라 생각되자 무(無)에 대한 구토가 일어난다. 그리고 충만에 대한 구토. 어떻게 버틸 수 있을까, 시간이 남아 있다면 얼마 동안이나 버틸 수 있을까? 아마도 오직 순간만 있으리라.’ 89쪽

 ‘존재하는 것은 그냥 있는 것과 같은지도 모른다. 이 모든 것, 이 세계는 용해될 수 없는 실재이거나, 아니면 절대적 실재의 껍데기일지도 모른다. 실재를 감추고 있는 단순한 커튼일지도. 동시에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수십억 개의 이미지와 목소리, 이런 모든 것은 부동의 근본적인 토대에 의해 지탱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추측일 뿐. 이런 토대가 있기를 절망적으로 원했다’ 107쪽

 그가 직장에 다니고 동료와 어울렸다면 그의 생은 달라졌을까? 여전히 그에게는 존재에 대한 갈증이 있었을 것이다. 육체적 욕망을 채우고, 계절이 바뀌고, 이념이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고, 세상이 변하는 것도 그에게 어떤 의미도 부여할 수 없었다. 결국 그가 그 답에 가장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건 죽음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와 같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로 살고 있지만 다른 나를 갈망하며 수많은 사람들 속에 존재하지만 나와 같은 이는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에 절망하면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는가. 쓸쓸하고 어두운 소설이지만 선명한 질문을 남기는 소설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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