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 눈물, 갈채...시로 하나 된 `신경림 낭독회`
웃음, 눈물, 갈채...시로 하나 된 `신경림 낭독회`
  • admin
  • 승인 2008.06.24 15: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데일리] 12월도 어느덧 중반. 2006년을 떠나보낼 채비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수선하다. 굳게 다짐했지만 일상에 치여 흐지부지된 계획들, 속수무책 늘어만 가는 나이. 하루라도 더 붙잡아 두고 싶지만 야속한 시간은 늘 쏜살같이 지나간다. 송년회를 비롯한 각종 모임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유난히 춥고 허한 이유다.

하지만, 14일 저녁 7시 ‘둘로스 소극장’에서 열린 ‘제2회 북데일리 낭독연가’를 찾았던 관객들의 귀가 길은 결코 쓸쓸하지 않았다. 작가와 독자를 떠나 사람을, 시를, 그리고 정(情)을 만나고 느꼈기 때문이다.

행사장을 가득 메운 150여명의 관객들과 낭송자로 나선 시인 신경림 최영미 이재무 고두현, 그리고 ‘좋은 책 읽기 가족모임’ 변현주 사무국장과 축하공연을 펼친 음유시인 위승희. 이 밖에 멋진 노래를 부른 독자 이루다(추계예대 문창과)씨와 수화(手話)로 시를 표현한 최숙희씨는 우리 시의 ‘읽는 맛’에 빠져, 가는 해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을 ‘함께’ 잊었다.

낭독회의 부제는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이 평소 즐겨 읽던 시를 엮은 앤솔러지 <내 인생의 첫 떨림 – 처음처럼>(다산책방. 2006)이 낭독도서였다. 시인들은 애송시와 자작시를 낭송했고, 독자들은 웃음과 눈물, 박수로 화답했다.

이용악의 ‘슬픈 사람들끼리’를 읽은 신경림 시인은 “어릴 때 이용악과 백석의 시를 보면서 공부했다”고 밝혔다. 우리 시대 ‘큰 시인’을 만든 시라는 말에, 독자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신경림의 ‘뿔’을 낭송한 최영미 시인은 “시가 짧은데 한 편 더 읽어도 될까요”라는 자청으로, 열광적인 환호를 이끌어냈다.

이재무 시인은 ‘한강’ 낭독에 앞서, 자신의 시에 얽힌 가슴 먹먹한 사연을 털어 놓았다.

“지금은 가난을 더 이상 팔지 않습니다. 80년대엔 장사가 됐는데, 이젠 사람들이 싫어해서요.(웃음) 사실 오래 전에, 동생이 아내가 될 사람을 집으로 데리고 온 적이 있어요. 줄 것이 없어 제 시집이라도 선물하려고 했더니, 동생이 ‘그 칙칙한 가난을 왜 보여주려고 하느냐’ 꺼려하더군요. 시인은 가난을 팔아, 먹고 살지만 가족들은 달가워하지 않는구나... 그 때 깨달았습니다.”

이어 이야기가 31살에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한 동생에게 바친 시 ‘재식이’로 흐르자, 몇몇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시를 읊는 시인의 목소리는 잔잔했지만, 독자의 가슴엔 감동과 슬픔으로 범벅된 파동이 일어나는 듯 했다.

고두현 시인은 ‘별에게 묻다’의 소재를 과학책에서 얻어왔다는 고백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번졌다. 이번 낭송회의 결산은 아마도 이재무 시인의 다음과 같은 감회일 것이다.

"이제껏 시 낭송회를 여러차레 다녀봤지만, 오늘과 같은 것는 처음이었습니다. 보통 한 40명 쯤 앞에 두고 하는게 당연한 풍경이었는데요. 그 열기에 놀랐고, 특히 찾아준 독자들 모두 기품있고 수준 높아보여 즐거웠습니다. 게다가 공연 내용 또한 독특해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막바지 신경림과 독자가 한 단락씩 번갈아 시를 읽은 ‘교송’, 행사에 참여한 전원이 함께한 ‘합송’은 이 날 행사의 백미.

“이런 기회가 잦으면 잦을수록, 시를 읽는 독자가 늘어날 것 같아요. 웰빙이 따로 없습니다. 시 읽는 게 웰빙이에요. 행복해지고 즐거워지고... 시집 가격도 쌉니다. 많이들 사서 봐주세요.”

행사의 끝 무렵, 신경림이 건넨 애정 어린 당부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잠들어있던 시심(詩心)을 일깨워준, 시인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작가와 독자가 함께한, 아주 특별한 송년회는 막을 내렸다. 비록 낭송회에 참여하지 못한 독자들, 시 한수를 읊으며 한 해를 마무리해보는 건 어떨까. 못다 한 일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따뜻한 시어(詩語)들이 감싸 안아 줄 것이다.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