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도 웃고 감동한 `작가 하성란 낭독회`
가을도 웃고 감동한 `작가 하성란 낭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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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6.24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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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중계] 제1회 북데일리 낭독연가-`웨하스`

‘낭독연가’는 북데일리가 책과 사람을 이어주는 다리가 되길 희망하며, 마련한 낭독회의 이름입니다. 텍스트와 음향의 접목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독자가 책을 오감으로 느끼는 체험의 장을 열어드립니다. - 편집자주

책 전문 뉴스사이트 북데일리는 지난 13일 `현미경적 묘사`로 유명한 작가 하성란의 소설집 <웨하스>(문학동네. 2006)로 낭독연가의 서막을 열었다. `웨하스`는 하성란이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창비. 2002)이후 4년 만에 내는 소설집이다.

제1회 북데일리 낭독연가의 주인공이 하성란으로 확정됐다는 소식이 공개되자 `열혈팬`임을 자처하는 독자들의 문의와 신청이 쇄도했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어쩔 수 없이 일찌감치 행사가 마감된 후에도 "서서라도 듣겠다"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책만 읽는 일반 낭독회와 달리 소설이 표현하는 `소리`를 실제 음향으로 들려주는 이색 낭독회라는 점이 독자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우아한 그리스식 만찬을 곁들인 점 역시 매력 포인트.

참석하지 못했던 독자들을 위해 웃음과 감동이 함께 했던 낭독회 현장을 지상중계 한다. 현장에서 울려 퍼진 음향을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이란!


**작가 몰래 준비한 깜짝 선물 '곰팡이 꽃의 노래'

낭독회 현장을 가득 메운 독자들의 연령대는 매우 다양했다. 낭독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푼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옅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본격적인 낭독회의 시작 전. 작가와 독자 몰래 준비된 `깜짝 선물`이 공개됐다.

원맨밴드 `곰팡이 꽃`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성훈(25)씨가 그 주인공. 자신을 "하성란 선생님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팬"이라고 소개한 그는 단편 `곰팡이꽃`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곰팡이꽃의 노래`를 열창했다. <곰팡이꽃>(조선일보사. 1999)은 TV 드라마로도 방영된 제 30회 동인문학상 수상작.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곰팡이꽃입니다...”

잔잔한 통기타 선율과 함께 구성진 목소리가 장내를 감싸자, 어수선하던 분위기가 정리됐다. 처절하고 우울한 분위기의 노래는 ‘쓰레기 속에서 썩어가는 진실’과의 대면으로 독자들을 섬뜩하게 만든 원작과 꼭 닮아 있었다.

행사의 말미에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시간에, 하성란은 홍씨에게 “노래가 정말 좋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그녀는 “팬카페 ‘옆집여자’(http://cafe.daum.net/ungiya)에서 곰팡이꽃이란 닉네임을 자주 보았다”며 “찌지부진한 사람이라고 예상했는데 실물이 멋져서 놀랐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 날, 홍씨는 11월에 발매될 정규앨범에 하성란의 소개글을 넣기로 약속받아, 주변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 텍스트와 음향의 접목, 새로운 시도 돋보여

"끔찍한 삶의 진실을 눈부신 묘사로 환기시키는 작가"라는, 사회자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의 소개가 끝나자 하성란 작가가 등장했다. 팬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첫 낭독 작품은 <웨하스>실린 `강의 백일몽`으로, 이수문학상 수상작.

하성란은 “2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까지, 20년이란 시간동안 한 여인이 어떻게 변해 가는가. 그 여인에게 있어 시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시간이 그 여인을 어떻게 마모시켜가는가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작품을 소개했다.

실내조명이 어두워지고 작가와 독자의 시선이 일제히 책으로 향했다.

“삽시간에 사방이 어두워졌다. 어둠 속에서 폐축사들이 희끗희끗 빛났다....”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에어컨 소리마저 거슬릴 정도로 고요해진 실내에서 오직, 작가의 목소리만이 침묵을 깨뜨렸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이었다. 모퉁이 건너편에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튀어나왔다. (끼이이익)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제동거리가 턱없이 짧았다.”

낭독 중간,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는 효과음이 터져나왔다.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진 독자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어 살피더니, 이내 책으로 시선을 향했다. 북데일리가 준비한 바로 그 음향효과였다.

숨죽인 독자들은 이후 일체의 미동도 없이 낭독에 빠져 들었고, 취재를 나온 카메라맨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발걸음을 조심조심 옮겼다.


*** 독자들이 쓴 수줍은 연서(戀書)

작가 낭독이 끝나고, 독자 편지낭독이 이어졌다.

하성란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에게 띄우는 독자들의 편지가 공개된,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첫 낭독자 류예지(24)씨는 평소 좋아하던 작가의 앞이어서인지 무척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삿뽀로 여인숙>(이룸. 2000)이라는 책 제목을 기억하지 못할 만큼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그녀는 이내 차분한 목소리로 낭독을 시작했다.

“고스케. 이제 나는 너를 다시 만난다고 해도 두렵지 않을 거야. 긴 세월을 건너왔으니. 설사 네가 나를 못 본 척 스쳐지나간다고 해도 예전처럼 가슴이 철렁하지는 않을 것 같아. 나는 너를 공기처럼 느낄 수 있으니까.”

류씨에 이어 독자 신용철(31)씨가 바통을 받았다. 재치 있는 농담으로 행사에 활기를 불어 넣은 신씨는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결혼 전에 이 소설을 읽은 것은 불행이자 행운이었다”며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의 ‘푸른 수염의 첫 번째 아내’에게 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독자 편지를 경청한 작가는 "저희가 연애편지를 시작으로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을 준비 중인데 두 분은 회원이 되셔도 잘할 것 같다"며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2부 무대에 오른 독자 김지현(25)씨와 김선녀(24)씨 역시 <삿뽀로 여인숙>과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의 등장인물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관객들은 작가 낭독 못지않게 일반 독자들의 낭독에도 집중했다. 낭독을 끝낸 독자들에게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 하성란, 등장인물과 ‘혼연일체’된 낭독 선보여

2부 작가낭독 작품은 <웨하스>의 표제작이라 할 수 있는 `웨하스로 만든 집`

‘굉장한 과자 매니아’라고 밝힌 하성란은 “어렸을 적에 웨하스를 보면 늘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소설은 무너진 여자의 집이 무덤처럼 되어버리는 절망적인 분위기로 끝나지만, 만화적 상상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희망적인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다시 어두워진 조명, 낭독이 또다시 시작됐다.

“S도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와 전철역을 출발해 인근 아파트 단지들을 도는 마을버스의 기사가 되어 있었다.”

버스 떠나는 소리가 효과음으로 들려왔지만 독자 중 누구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미 음향은 텍스트와 함께 낭독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테이블에 준비된 빵과 와인에도,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 낭독을 듣는 순간만큼은 배고픔도 목마름도 잊은 채 `무아지경`에 빠져든 듯 했다.

“저 빨강 지붕 좀 봐. 굴뚝이 있어. 드디어 산타가 우리 집을 방문할 수 있게 됐어.”

“세상에. 이 마루도 끼어 자면 열은 충분히 잘 수 있겠네.”

하성란은 작품 속 캐릭터에 따라 말투와 어조를 바꿔가며 ‘연기’를 했다. 그녀가 불어넣은 숨결에 의해 생명력을 얻은 인물들이 살아 움직였다.

“삶이 제 뜻대로 굴러갔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거에요.”

1,2부로 나뉘어 진행된 낭독이 모두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시간이 이어졌다.

질문을 던진 첫 번째 독자는 북디자이너인 서은진(30)씨. 그녀는 작가에게 “왜 소설을 쓰느냐”고 물었다.

하성란은 “제가 40살 밖에 안돼서 삶이란 단어를 쓰기 그렇지만, 제 삶이 제 뜻대로 굴러 갔다면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겁니다”라며 “진학이나 학력고사 점수가 마음대로 됐으면, 다른 일을 했을 텐데...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출판사에 다녔던 아버지가 총천연색 책 광고지로 다락방을 도배해주셨다며, 한 쪽엔 톨스토이, 한 쪽엔 도스토예프스키가 있는 방에서 컸기 때문에 ‘글을 안 쓸 수가 없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삿뽀로 여인숙>에서 주인공이 마지막에 만난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에는 작가로서는 하기 힘든, 진솔한 심경을 토로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만족할 만한 작품이 뭐가 있냐고 하면 딱히 내세울 것 없지만, <삿뽀로 여인숙>은 그동안 썼던 소설 중에 가장 불만족스러운 작품이에요. 왜 그런 소설을 썼는지 저도 모르겠어요.”

작가의 숨김없는 고백에 독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창작의 고통, 작품에 대한 회한...

그녀가 내비친 인간적인 면모가 독자와의 거리를 한층 가깝게 만들고 있었다.

“이 마당에 솔직하지 못할 게 어디 있겠어요. 이미지들의 범람 같은 것을 통해서, 공통적인 이미지를 하나 드리고 싶다는 것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다시 읽어보기 창피해서 안 읽어봤지만, 시간이 되면 개작을 하고 싶어요. 문학적으로 성과를 거두진 못했지만 많은 독자들이 <삿뽀로 여인숙>으로 저를 기억해주시니, 고마운 작품이기도 하거든요.”

<삿뽀로 여인숙>은 하성란이 발표한 최초의 장편소설. 그녀는 “그렇게 많은 분들이 자신의 장편소설을 기다릴지 몰랐다”며, “앞으로 수없이 발표할 텐데 하나쯤은 이미지만으로 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 하성란 “사랑밖에 난 몰라” 구성지게 불러

“제가 프랑크푸르트에서도 낭독회를 했는데 독자들이 많이 안 오니까, 한국 기자 한 분이 화를 냈어요. 얼마나 홍보를 안했으면 이렇게 사람이 없냐구요. 그런데 귄터 그라스 낭독회도 참가자가 그 정도 밖에 없다고 하더라구요. 이번 북데일리 낭독연가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세계를 앞지르는 낭독 문화가 정착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낭독회가 기념비적인 행사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게, 시도들이 독특해요. 특히 중간에 음향을 넣은 것이 낭독효과를 더 극대화시킨 것 같아요. 장면이 전화되는 부분에서는 그 역할이 돋보였죠.”

작가의 소감으로 막을 내리는 듯 했던 낭독회.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사회자가 돌연 작가에게 즉석 라이브를 요청한 것. `편지 쓰는 작가들의 모임`에서 열창했던 하성란의 노래를 귀담아 들어둔 사회자의 급작스런 요청에 그녀는 `빼지 않고` 노래를 시작했다.

“그대 내 곁에 선 순간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작가가 부른 `사랑밖엔 난 몰라`는 애절했다. 코끝을 찡그리며 바이브레이션까지 소화해내는 노래 실력엔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작가의 새로운 모습에 독자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음향과 텍스트가 함께 하는 이색 낭독회답게, 작가의 노래까지 어우러진 특별한 시간이었다.

낭독회 후 그리스식 저녁 만찬을 즐기고 있는 몇몇 독자들을 만나봤다.

직장인 이용준(32)씨는 “평소 책을 잘 읽지 않는데, 낭독을 통해 책을 읽으니 소설 읽는 재미가 배가 된 것 같다”며 “작가가 직접 낭독을 하면서, 주인공의 감정에 몰입하는 모습에 나도 동화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하성란씨가 이나영을 닮은 것 같다”며 작가의 미모에 놀라움을 표한 직장인 김지현(25)씨는 “문학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며 “특히 하성란씨 소설은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30대 초중반의 남자들이 눈에 띄어서 신기했다”고 전했다.

낭독회를 찾은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김다은 교수는 "외국문학, 인문학이 발달한 가장 큰 이유가 낭송문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종이가 나오면서 낭송문화를 이끌었던 음유시인이 사라졌고, 이제 전자책등 새로운 매체가 나타나면서 펄프작가가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으로 낭독이 매체의 변화에 상관없이 영원토록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끈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낭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내가 원래 작가지망생이었다. 대추리 옆의 땅 40만평에 대한 분쟁이 5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데, 그에 관해 취재한 자료를 사과박스 채 지니고 다녔다. 이사 가다가 비를 맞아서, 아내가 버렸는데 만약 계속 가지고 있었다면 그걸로 소설을 썼을 것”이라며 “오늘 낭독회를 통해 그런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작가의 꿈이 다시금 떠올랐다”고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와인과 그리스식 저녁 만찬, 작가의 낭독과 솔직한 고백이 남긴 여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쌀쌀한 가을바람에도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데우고 있었다.

낭독회에 온 독자라면, 하성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봐도 좋을 듯하다. 주변 사람을 관찰해 소설 속 인물로 형상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그녀가 당신을 새로운 주인공 감으로 눈여겨 봤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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