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향숙 의원 "책은 내 삶의 라임오렌지나무"
장향숙 의원 "책은 내 삶의 라임오렌지나무"
  • 북데일리
  • 승인 2007.02.2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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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깊은 긍정> 펴낸 열린우리당 장향숙 국회의원

[북데일리] 국내 첫 무학력 여성장애인 의원인 열린우리당 장향숙(49)씨. 장애인관련 불합리한 법 개정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 그녀는 휠체어에 의존하지 않으면 활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이다.

장 의원은 태어난 지 1년6개 월 만에 소아마비에 걸려 22살이 되기까지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당연히, 학교에 다닌 적도 없다. 문지방을 뱀처럼 넘어 다니던 암흑의 청춘. 그 지독한 고통 중에 그녀를 살게 한 것은 바로 ‘책’ 이었다.

성경을 통해 글자를 깨우친 장 의원은 동생의 학급문고는 물론 교회 비치용까지 닥치는 대로 해치우던 열혈 독서광이었다. 한 두 끼 식사 외에 독서 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읽을 것이 떨어지면 읽던 책을 반복했고, 성경은 100번도 넘게 통독했다. 이를 안 아버지는 사업실패로 빚쟁이들이 물건을 쓸어 갈 때도 “딸 책만큼은 그냥 두소”라고 절규했다.

이 같은 독서 편력 덕에 장 의원은 ‘만리장서’라는 별명을 얻었다. 50년간 읽은 책이 줄잡아 1만 여 권이라는 데서 비롯됐다. 에스(S)자로 굽은 척추가 심장과 폐를 압박하는 통증에 시달리는 그녀지만, 여전히 책을 손에서 놓질 못한다.

“독서 경험을 글로 옮기라”는 주변의 권유 끝에 펴낸 에세이집 <깊은 긍정>(넥서스. 2006)은 장 의원의 분신 같은 책이다. 지독한 독서편력은 물론 월 18만원의 보조금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가난한 과거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책 출간을 맞아 지난 1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장 의원을 만났다. “반갑습니다”라며 악수를 청하는 그녀에게서 힘찬 기운이 느껴졌다. 휠체어를 고정 시킨 후 장 의원이 꺼낸 첫 마디는 “민생과 관련한 법안들을 2월 국회 중에는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굳은 의지였다.

장애인은 물론 노인, 저소득층을 포함한 소외계층을 위한 법안들이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 이 중에서도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과 장애인복지법전면개정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수년간 장애인단체들이 힘을 모아 싸워 온 염원이기 때문이다. 장 의원은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라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어린 시절, 장 의원의 꿈은 작가였다.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있던 시간.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히곤 했다. 방법을 몰라 포기 했던 꿈을 <깊은 긍정>을 통해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인세 전액은 오랜 숙원사업인 아시아빈곤장애인을 위한 교육기금 마련에 기부할 계획이다.

장 의원은 “현대인들에게는 책읽기보다 영상이 익숙하게 다가가는 것 같다”며 “이는 결국 스스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아닌 완벽하게 상상되어 진 것은 바라보는 행위일 뿐”이라고 우려했다. 자신이 그러했듯, 읽기야 말로 인간을 변화시키는 필수적 요인인데 이를 등한시 하는 세태를 보면 안타까움이 든다는 것. 그녀는 “삶의 한 고비를 넘길 때 마다 곁에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면서 “꾸준히 독서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고 강조했다.

책과 함께 부유 했던 시절. 신학, 철학, 인문, 소설 등 장르별로 읽지 않은 책이 없을 정도로 독서에 심취한 데는 가정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장 의원의 조모(祖母)는 <사랑의 원자탄> <위대한 순교자> 등의 고전적 기독교 서를 즐겨 읽는 독서가였다. 신앙심이 깊어 90세를 넘긴 후에도 1달에 1번, 1년에 12번 <성경> 통독을 했다. 어머니 역시 성경읽기를 쉬지 않았다. 장 의원이 글자를 깨우친 것도 어머니를 따라 성경을 읽은 덕이다.

노벨상 수상작, 프랑스 소설, 중남미 문학, 철학서 등의 테마를 정하면 그에 속하는 책 모두를 찾아 읽어야만 직성이 풀리던 젊은 날. 곰팡내가 나는 책은 잘 숙성된 명품 포도주처럼 느껴졌고 그런 책장을 넘기는 일은 우아한 귀공녀의 속옷을 훔쳐보는 일과도 같았다. 장 의원은 세상과 단절되어 책에만 빠져 살았던 당시를 ‘영혼의 깊은 밤’이라고 표현했다.

“유난히 책읽기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였죠. 하지만 그런 내 삶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책은 내 삶의 라임오렌지나무였으니까요”

장 의원은 20대를 넘어가며 새롭게 발견한 ‘시몬느 베이유’를 좋아하는 작가로 꼽았다. 나이 들면서 깊게 다가 온 존재는 공자, 맹자, 도가. 겸양과 지혜, 사유의 깊이를 더하게 해 준 은사 같은 책들이다.

책 추천 요청을 받을 때 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권한다는 장 의원. 그녀는 “종교도 믿어봐야 아는 것처럼 책 역시 자신에게 맞는 책은 반드시 읽어봐야 한다”며 “읽다 보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고 전했다. 읽고 있는 책은 <장정일의 공부>와 <희망의 인문학>. 부족한 시간을 쪼개 틈나는 대로 인문학과의 만남을 즐기고 있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의 내면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는 게 신념처럼 굳어진 믿음이다.

타고난 긍정적 태도로 육체적 한계에 도전 하는 장의원에게 삶이란 신이 주신 축복이요, 감사다.

“저는 엎드린 채로 세상을 바라봐온 사람입니다. 두 발로 서서 보는 세상과 엎드려서 보는 세상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엎드린 사람은 지구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낀다는 말처럼 사람들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끼는 정치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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