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녕 “작가가 독자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돼...”
윤대녕 “작가가 독자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돼...”
  • 북데일리
  • 승인 2007.02.1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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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 펴낸 작가 윤대녕

“작가가 독자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돼요. 독자들이 요구하는 대로 쓴 작품을 문학에 포함시키기는 힘들죠. 문학은 항상 뭔가를 견인해야 해요.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합니다.”

[북데일리] 3년 만에 신작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창비. 2007)를 발표한 작가 윤대녕(45). 그가 문학을 하는 작가의 태도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드러냈다. 최근 일산에 위치한 작업실 근처에서 만난 그는 “문체나 구성 면에서 기본적으로 품격을 유지하는 작품을 써야한다”고 강조했다.

타인보다는 스스로를 향한 조언이자 격려다. 윤대녕은 데뷔작 <은어낚시통신>(문학동네. 1994)으로 우리 문단에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독자의 뇌리에 박힌 강렬한 첫 인상은 이내 그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나에 대한 강박관념이나 오해가 너무 오래가는 것 같아요. 데뷔작이 나오고 지금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처음의 이미지가 아직도 새 소설에 적용되고 있어요. 실제로 중간에 발표한 책들은 이전과 비슷할 거라고 짐작하곤 안 읽은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 독자가 많지 않은 건지도 모르죠. (웃음)”

독자의 소리를 무조건 ‘나 몰라라’ 하는 건 아니다. 요즘은 문학계에 불어 닥친 일류열풍과 관련, 일본소설을 정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 독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고 파악하기 위해서다. 작가로서의 신념도 독자와의 공감과 소통이 유지되는 선에서 지켜나가야 한단다.

<제비를 기르다>는 독자에 대한 배려가 눈에 띄는 작품. 현실감 있는 캐릭터, 구체적인 상황 묘사, 수식어를 배제한 문체로 전작들이 지녀온 모호함을 덜어냈다.

“제가 2003년에 제주도에 가서 2005년에 돌아왔는데, 내려가기 1년 전부터 딜레마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했어요. 문학에 대한 요구가 치환되지 않았던 거죠. 기관지 때문에 몸도 안 좋았고요. 삶의 터전이 옮겨지니까 조금씩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세밀하게 인생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생기고, 그 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에 대해 사색을 하게 됐어요.”

서울로 돌아온 후 변화는 더욱 구체화됐다. 소설에 있어 서사적 구조, 타인의 내면에 대한 묘사에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이는 곧 작품으로 형상화됐다.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윤대녕의 이번 소설집에는 시간의 경과를 알려주는 표현이 도처에 보인다”며 “세월의 나이테를 천천히 펼쳐 보이는 이러한 서사적 조망 속에서 짧은 시간의 단면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인간 운명의 유장함과 곡진함이 드러난다. 동시에 그것은 인간사의 진실을 좀더 긴 호흡으로 살피게 만든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윤대녕은 “그동안 써왔던 것들에 대한 회의나 부정은 아니”라며 “다만 삶을 살아가고 세계를 이해하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방법론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실 윤대녕은 자부심이 대단한 작가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꼿꼿함과 자존심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명심해 왔다. 문인은 가난하고 술을 많이 마시고 사생활이 불안정하다는 선입견은 그야말로 개탄할 노릇. 그는 얼마 전 보도된 신춘문예 당선자의 생활이 어렵다는 기사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어려움을 토로하는 일은 도리어 부작용을 가져오기 쉽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쓴 글을 독자가 좋아하지 않는 시대가 왔어요. 그리고 어떤 분야든 데뷔만 했다고 해서 미래가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매년 신춘문예로 2.30명이 등단하는데 그 중에 살아남는다고 할까, 계속 작품을 쓰는 작가는 1.2명에 불과해요. 늘 그래왔죠.”

가난과 고통에 대한 각오 없이 무작정 뛰어든 작가에게 가하는 따끔한 충고인 셈이다. 1988년 단편 ‘원’으로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지만, 당장의 밥벌이를 위해 7년간 각종 직장을 전전한 그이기에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저는 글을 잃지 않으려고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는 생활을 이어왔다. 그 때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 지금도 하루에 8시간은 자료조사, 독서 등 집필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글을 쓰며 보낸다고. 2.3일 정도 일을 못하면 우울증이 온다는 이야기에서 그의 열정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저에 대한 오해가 굉장히 많아요. 문단이나 언론까지 제가 독자가 많고 책이 잘 팔리는 걸로 생각하죠.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전업 작가로 생계를 꾸려가기가 힘들지만 누추한 이야기는 절대로 안 해요. 혼자 견뎌낼 몫이잖아요. 작가는 독자에게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에요.”

전업 작가로 들어선 후에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았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 같은 답이 돌아왔다. 윤대녕의 고정 독자 수는 1만 명 안팎. 작가는 그의 독자가 곧 문학 독자라고 여기고 있었다.

“문학동네 강태형 대표가 문예지 팔리는 숫자가 문학 독자 수가 아니겠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1만 부가 안 되거든요. 제 독자가 대략 1만 여명인데 주로 문학 공부하는 학생들, 문창과 학생들에 집중돼 있어요. 문학 독자가 바로 제 독자인 것 같아요.”

작가가 지녀야할 품위를 중시하는 그이지만 그렇다고 권위만 내세우는 건 아니다. 윤대녕은 발로 뛰는 작가로 유명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소는 일일이 답사한다. 표제작 ‘제비를 기르다’는 바람을 쐬러 간 강화에서 우연히 작부집을 발견하고 떠올린 이야기. 구체적인 내용 구상을 위해 작품엔 잠깐 등장하는 태국 취재까지 감행했다. ‘마루 밑 이야기’에 나오는 대관령 휴게소 역시 직접 방문해서 현장을 살폈다.

“여행 정보를 보고 쓰는 건 표시가 나요. 저 같은 경우엔 직접 가보지 않으면 문장 자체가 안 나오더라고요. 소설의 구조나 생생한 표현을 위해서는 취재를 다녀오는 게 좋죠. 작가한테는 의무라고 생각해요.”

직접 체험이 중요하다는 말. 그래서 작가는 인터넷 자료도 신뢰하지 않는다. 표피적인 정보만 얻기에 글을 쓰는데도 별 도움이 안 된단다. 작업실에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은 이유다.

“인터넷만 사용 안하지 집필은 노트북으로 해요. 원고가 완성되면 프린트해서 퇴고를 하죠. 요즘도 등단 초기에 그랬던 것처럼 3.4번은 고쳐 써요. 그래서 단편 하나만 쓰더라도 굉장히 지쳐요. 편집자는 좋아하더라고요. 손 볼 데가 별로 없다고.”

사정이 이렇다보니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다. 기껏해야 한 달에 1.2번 정도 아주 가까운 사람들하고만 어울린단다.

“사소한 흐트러짐 때문에 생활 패턴이 바뀌거나 시스템에 에러가 나는 걸 경계합니다. 재미없게 사는 거죠. 매일 매일 운동, 독서, 집필만 반복하고 있어요.”

작가의 삶이 재미없을수록 독자는 신이 난다. ‘자발적 유배’ 속에 깊어진 상념을 선사받기 때문이다.

윤대녕은 차기작으로 “근력이 있을 때 한 번 타 넘어가고 싶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고려 중”이라고 한다. 자신의 공력으로 가능한 작품인가를 엄밀히 계산하고 있다.

“아마 독자에게 굉장히 신선한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 신작을 내놓을 때 까지 만이라도 단조로운 삶이 계속됐으면, 그래서 작품이 빛을 볼 수 있으면, 이란 ‘불순한’ 바람을 품은 이가 기자 하나만은 아니지 싶다.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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