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을 도서관으로! 괴짜 교장선생님
교무실을 도서관으로! 괴짜 교장선생님
  • 북데일리
  • 승인 2007.01.25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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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책, 꽃만큼 아름답고 밥만큼 소중하다> 저자 이혜화

[북데일리] 70명 교직원을 달래 교무실을 도서관으로 개조했다.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막대사탕을 인센티브로 주고 밤늦게까지 책을 읽는 사람에게는 사발면을 사주겠다고 유인했다. 읽고 싶은 책은 무엇이든 읽으라며 판타지, 로맨스, 무협소설을 곳곳에 배치했다. “수십 년 된 책까지 진열하는 도서관은 유통기한 지난 상품을 파는 악덕 매장과 다를 게 없다”는 이유로 끊임없이 새 책을 들였다.

결과는 대성공. 도서관은 문전성시를 이루었고 “집에 가지 않겠다”는 아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도서관을 보러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2003년에는 제41회 전국도서관대회 학교도서관 우수학교로 선정되어 문화관광부장관상까지 수상했다.

경기도 고양시 화수고 학교도서관의 탄생 이야기다. 이 분투기의 주인공은 화수고 전 교장 이혜화(64) 씨. ‘못 말리는 책 교장’으로 유명한 괴짜다.

2005년 화수고 교장을 정년퇴임하기까지 ‘학교도서관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이 씨가 겪은 ‘고초’는 한 편의 영화를 방불케 한다. 그 좌충우돌 스토리가 <책, 꽃만큼 아름답고 밥만큼 소중하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07)라는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일반교실에는 에어컨을 아끼면서도 도서관은 시원하게 해주고, 다른 곳에는 난방을 통제하면서 도서관만큼은 따뜻하게 해주었다는 책교장. 만나 보니 그 스스로부터 책에 미친 책벌레였다.

“교사를 통해서 배우는 공부는 지극히 한정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바다 같은 지식과 정보가 넘치는데 그에 비하면 학교교육은 너무나 작은 양이죠. 그래서 책읽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저부터도 학교에서 선생님들에게 배운 것보다 책을 통해 혼자 배운 것이 훨씬 많았는걸요”

이 씨는 명쾌하고 담대한 독서론을 펼쳤다. 교육의 역할을 폄하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교사의 역할을 확대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교육으로 부족한 부분은 책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교육철학이다. 엄격한 검증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책은 신뢰 할 수 있는 대상이라고 그는 말했다.

읽을 것도 공부할 것도 부족했던 전쟁세대. 고단한 시절을 겪은 이 씨는 중학 시절 친구, 선배들과 책을 구해 밤새 함께 읽는 ‘집단낭독’을 즐기던 독서광이었다. 모이기 힘들거나 책을 돌려줄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는 한 사람이 먼저 읽고 차례로 돌리는 방식을 취했다. 당시의 주 종목은 탐정소설, 특히 ‘괴도 뤼팽’ 시리즈가 인기였다고. 김내성의 <마인> <백가면> 방인근과 민태원의 작품도 즐겨 읽었다. 후일 고교 국어교사로 <청춘예찬>을 가르치며 필자 민태원을 소개 할 때는 유년 시절 읽은 그의 작품 <암굴왕>과 <무쇠탈>이 떠올라 벅찬 감회에 사로잡히기도 했단다.

여러 문학작품에 심취 하던 이 씨는 시, 수필, 동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글을 지어 ‘두더지’라는 개인문집까지 만들던 어린 문필가였다. 고등학교에 진학 하고 난 후에도 ‘닥치는 대로’ 읽기는 계속 됐다. 조금만 친해졌다 하면 “무슨 책을 갖고 있느냐”고 꼬치꼬치 캐물어 친구의 책을 빌리 곤 했다. 성장기의 책읽기는 교사가 된 후 ‘향학열’이라는 형태로 바뀌었다.

고졸출신 준교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한 이 씨는 나이 마흔이 되던 해 대학을 졸업했다.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한다는 것, 어린학생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 모두가 쉽지 않았지만 그칠 줄 모르는 학구열이 그를 부추겼다.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과정을 거쳐 박사과정까지 수료하고 나서야 게걸스러운 학구열이 멈춰졌다. 이 씨는 학업을 계속 하고 싶어 하는 후진들에게 조언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학위를 취득해서 내가 들인 돈, 노력, 시간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 한다면 시작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공부는 투자 한 만큼 얻어지는 적금이나 예금이 아니거든요. 다만, 공부하는 것 자체에 보람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권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 희열을 느껴야만 진일보 할 수 있는 것이 진짜 공부죠”

불혹의 나이를 넘겨 이룬 학업 역시 남다른 뚝심과 의지가 빚어낸 결실이었다. 변변치 않은 책 하나 없던 열 평짜리 공간을 최고의 학교도서관으로 만들기까지. 필독서만 권유하는 시어머니 같은 도서관이 아니라 마음 놓고 언제든 들려 어떤 책이든 읽다 갈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겠다는 지조는 교직생활 내내 변함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내실. 이 씨가 ‘도서관’이 아닌 ‘도서실’을 주장하는 이유는 책을 읽는 공간이 접근하기 쉽고 이용하기 쉬운 곳에 위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도서실은 무조건 가까워야 해요. 오다가다 슈퍼마켓처럼 들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중요한 게 장서확보에요. 책은 무조건 많은 것이 좋습니다. 인격형성에 해를 입히는 책만 아니라면 어떤 것이든 읽히는 것이 좋죠. 책을 친숙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필독서를 읽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씨는 “아이들이 원하는 다양한 종류의 책을 구비해 준 결과, 판타지만 읽던 아이들이 고급 단행본까지 읽는 ‘놀라운’ 변화를 목격했다”며 장서확보의 중요성을 강조 했다.

40여년 교직생활의 오롯한 꿈이던 ‘학교도서관 프로젝트’를 이룬 이 씨에게 <책, 꽃만큼 아름답고 밥만큼 소중하다>의 출간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학생들에게 보다 나은 독서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애쓴 젊은 날과 책밖에 모르던 유년시절의 추억을 알곡처럼 담은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치열하게 겪고, 읽고, 공부한 깨달음을 후진들에게 전하고 있다. 학교도서관 운영에 있어 조언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것 역시 이 때문이다. 요즘도 책을 많이 읽느냐는 질문에 그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예전처럼 밤새워 읽지는 못해요. 젊었을 때는 무슨 책이든 펴면 끝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렸는데... 나이가 드니 체력이 약해져서 그것까지는 힘들더라고...”

물론, 에두른 핑계였다.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비롯한 각종 신간은 물론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까지 몇 번이나 봤음이 금세 들통 나고 말았다. 책교장의 열정은 여전했다. 아주 조금, 나이 들었을 뿐.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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