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24만권 북한책 수집 "서러운 내 책들의 역사"
① 24만권 북한책 수집 "서러운 내 책들의 역사"
  • 북데일리
  • 승인 2007.01.22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서광의 방⑧] 대전사는 대훈서적 대표 김주팔(66)씨

[북데일리] 창고의 책들은 언제나 서럽다. 먼지가루에 눈이 멀고 습기로 몸이 삭을 때까지 책이 생각하는 것은 단 하나, 주인과의 재회다. 이들의 숨은 울음은 독서광을 슬프게 한다. 안으로 들여 놓지 못한 책들에 대한 미안함. 그것으로부터 독서광 역시 자유롭지 못하다. 독서광에게 있어 창고의 책은 영원한 미련이요, 풀지 못한 숙제다.

17년간 4천여 종, 무려 24만권에 달하는 북한책을 수집해 온 독서광 김주팔(66)씨의 창고는 어느 독서광의 창고 보다 암울했다. 대부분이 ‘특별자료’로 묶여 세상에 나올 수 없는 북한책이기 때문이다.

대전 중구 선화동에 위치한 북한책 전문서점의 지하1층, 지상 6, 7층이 김 씨의 책 창고이자 서재. 층 별로 장르를 구분해 놓지는 않은 이유는 아직 ‘일반자료’로 풀리지 않아 상자채로 있는 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수백 개의 상자 위에 찍혀 있는 ‘NK’(North Korea) 마크가 서글픈 분단의 역사를 실감케 했다. 상자 안에 갇힌 책을 묵직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김 씨는 “어서 일반자료로 풀려야 할텐데...”라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로부터 들은 17년간의 수집사연은 기이하고, 고단했다.

김 씨는 대전에 위치한 대훈서적의 대표직을 맡고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16세 때 책 파는 일을 시작한 이래 서점일만 올해로 50년째다. 대훈서적은 대전을 대표하는 대형 서점. 대전에 3개, 천안에 1개, 3월에 오픈할 지점까지 있으니 겉보기에 김 씨는 남부러울 것 없는 재력가다. 그런 그가 17년간 ‘돈 한 푼 되지 않는’ 북한 책수집에 17년이나 매달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고객이 원하면 무슨 책이든 구해다 준다는 사명감 때문 이었다”고 답할 뿐이었다.

지금이야 편하게 이야기 하지만 모두가 “미쳤다”며 만류한 ‘위험한 일’이었다. 북한책을 들여오며 공항에서 빼앗기기를 수차례. 이적물이라는 이유로 협박, 취조까지 당한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책 수집을 멈추지 않았다. 가족마저 “서점 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17년 전 한 대학교수가 논문에 참고 할 북한책이 있다며 도움을 청해 온 것이 사건의 발단이 됐다. 요청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 씨는 짐을 챙겨 서울로 향했다. 유명하다는 책방이란 책방은 이 잡듯 뒤졌지만 북한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김 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일본, 홍콩, 중국까지 오가며 책 사냥을 한 끝에 연변에서 책을 찾아냈다.

김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상기된 표정을 지어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연변시내를 수놓던 우리말간판이었다고. “민족적 자부심이랄까. 그런 게 가슴 막 밀려오더라고요. 이렇게 멀리 살고 있지만, 우리글이 있어 한 민족이라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북한책 과의 감격스러운 첫 만남이 이루어졌다.

책을 받아 들고 기뻐하는 교수를 보니 연구 자료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줘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합법적으로 책을 들여오기로 마음먹은 김 씨는 98년이 되자 허가신청서를 접수했다.

책도 자원이니 산업자원부에 신청하면 맞을 것 같아 그렇게 했더니 3개 월 후 서류를 반려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해당부서 소관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99년이 되던 해 출판은 문화광광부소속이 아니냐는 주변의 말을 듣고 서류를 정리해 문화관광부로 찾아 갔다. 해당직원의 태도는 냉랭했다. 언제 허가가 날지 모르니 놓고 가려면 가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었다. “허가를 내주셔야 북한책을 합법적으로 가져 올 수 있습니다”라는 부탁을 수없이 반복했지만 결국,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했다.

막막한 기다림이 계속됐다. 그러던 중 제주도에서 열리는 출판경영자세미나에 당시 문화부장관이었던 박지원 씨가 온 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그 길로 김 씨는 제주 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② 박지원 전 장관 만나 "북한책 반입" 간곡 요청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