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책 기획에 미쳐사는 `서점 총각`
책과 책 기획에 미쳐사는 `서점 총각`
  • 북데일리
  • 승인 2007.01.19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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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깜짝 `객장내 연극공연` 시도해 화제모은 영풍문고 박승환씨

“꼭 사고 싶은 책이 있는데, 윤대녕 씨 소설이거든요. 제목을 모르겠어요. 표지에 꽃이 많이 그려져 있는 책인데...” “아이가 산만한 편이에요. 집중력도 많이 떨어지고. 어떤 책을 읽히면 좋을까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참 괜찮던데, 공지영 씨 다른 책 중 추천해주실 만한 책 없나요”

[북데일리] 오프라인 서점 직원 L씨는 오늘도 이처럼 ‘모호한’ 질문을 던지는 고객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작가, 출판사 명만 입력하면 진열위치까지 출력해주는 검색기가 버젓이 놓여 있는데도 책을 찾아 달라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원하는 답을 제시하지 못하면 화를 내거나, 추천해 준책이 마음에 안 든다고 환불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고객도 있다. “진작 책 좀 읽어 둘 껄...”하는 후회가 막심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어쩌다 서점에 취직하기는 했지만 읽은 책이 별로 없는 L씨는 요즘 자신의 부족한 자질을 통감하고 있다.

영풍문고 종로본점 영업관리팀에 근무하는 박승환(33) 주임은 이런 후배나 동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는 ‘타칭’ 책 전문가다. 작가이름만 들어도 연보를 줄줄 꿰는 박 주임의 `내공`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서점직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다량의 독서’”라고 주장하는 독서광 박 주임은 다른 사람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책을 추천하는 일에서 오히려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물밀듯 밀려드는 라디오, TV 프로그램 출연 요청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박 주임에게 서점일은 그야 말로 ‘천직’ 이다.

박 주임이 맡고 있는 업무는 기획 파트. 영풍문고에서 진행되는 각종 문화공연 행사를 기획, 진행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객장 안에서 깜짝 공연을 시도해 화제를 모은 연극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역시 박 주임의 작품이다.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닌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서점의 변화를 최전선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이다.

“예전에 비해 문화행사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해졌습니다. 새로운 기획이나 아이디어가 끊임없이 요구 되는 것도 그 때문이죠”

다양한 형태의 공연, 예술이 책에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은 박 주임의 지론. 팝업북 전시회, 사진전시회, 준비 중에 있는 북한미술전시회 역시 이러한 일환에서 추진한 행사들이다. 오는 5월에는 구체관절인형전시회도 계획 중에 있다. 최근에는 출판사의 제의로 책을 연극으로 표현하는 공연을 마련해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는 앞으로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범위’라면 얼마든지 새로운 기획을 해 볼 수 있지 않겠냐고 당차게 반문했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박 주임은 자신에게 서점 일은 최적의 직업이라고 했다. 일에 대한 만족도가 90% 이상이라고 하니 그야 말로 운명의 직업인 셈. 한 때 작가를 꿈꾸던 문학도였던 박 주임은 “밥 먹듯 책을 읽던 시간이 큰 도움이 된다”며 서점직원이 갖춰야 할 필수 요건으로 ‘방대한 독서량’을 꼽았다. 고객이 찾는 책이라면 무엇이든 찾아 줄 수 있어야 적어도 서점에서 일한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겠냐며 프로다운 근성을 보였다.

재소자와 1년 넘게 책 우정 간직해와

다른 사람에게 책을 소개하고 추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박 주임이 만족감을 느끼는 가장 중요한 부분. 문화행사는 물론 기부행사를 하면서도 큰 보람을 얻는단다. 근 1년간 편지를 주고받으며 쌓아 온 한 재소자와의 사연도 들려줬다.

“서점이다 보니 책기증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와요. 그 중에서도 그 분의 편지가 제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아요”

1년 전 “어떤 책이든 좋습니다. 읽을거리라면 뭐든 좋으니 책을 보내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라는 글귀가 쓰인 편지 한 통이 사무실로 도착했다. ‘특정 책이 필요하다’는 구체적인 요청이 아닌 “어떤 책이든...”이라는 문장이 박 주임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책을 읽고 싶다는 절실함이 느껴졌다. 박 주임은 편지를 보낸 재소자에게 책을 보내주기 시작했다. 출판사에서 받은 책, 개인 돈으로 구입한 책 등 모두 회사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의 후원이었다. “너무 고맙습니다. 기대를 안 하고 보낸 편지였는데... 제 주변에서 편지를 보내 책을 받은 사람은 제가 처음입니다”라는 감동 섞인 답장이 왔다. 그렇게 보낸 두 사람의 책 우정은 1년을 이어오고 있다. 박 주임은 서점 일을 하지 않았다면 겪을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이었다며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한마디 말보다 한권의 책이 위로가 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저부터도 그런 경험을 여러 번 했거든요”

자신부터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박 주임. 그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거나, 말을 걸고 싶을 때 그것을 가장 잘 표현 할 수 있는 것이 책 같다”며 책읽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 위로가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필요 한 것 역시 책이라고. 그건 ‘글’ 만이 갖는 힘이 아닐까 싶단다.

2007년에는 책 읽는 독자층을 더 넓히자는 것이 영풍문고 종로 본점의 목표. ‘누구나 찾고 싶은 편안한 서점’을 만들기 위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의자시설을 늘려가고 있는 것은 물론 각박한 도심과 다른 자연의 편안함을 주기 위해 매장 곳곳에 화분을 놓아두고 있다. 책을 읽거나 고를 때 고객이 불편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서가와 서가 사이의 공간을 넓혀 서로 등이 닿지 않게 한 것 역시 이러한 배려의 차원이다. 출판사 명으로 색인을 해 두어 책을 쉽게 찾을 수 있게 해 둔 덕 에 “어떤 서점보다 책 찾기가 쉽다”는 평을 듣고 있다.

올해로 서점경력 5년차를 맞는 박 주임은 “서점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책을 많이 읽었다는 자만심도, 고객의 요청을 귀찮게 느끼는 교만함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방대한 독서량과 함께 갖춰야 할 자질은 바로 ‘겸손함’. 서점일은 자신을 많이 낮춰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고객이 책을 고르고, 찾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에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해 낼 수 있는 일이라는 그의 말은 서점에 취직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새겨 둘 만한 좋은 충고다.

박 주임의 나이는 올해로 33세. 아직 미혼이지만 결혼 보다는 일이 좋다고 하니 언제 아이에게 책 골라주는 착한 아빠가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신, 가슴에 품고 있는 꿈이 있다. 바로, 작가가 되는 것.

“지금 일도 너무 좋지만 기회가 되면 제 이름으로 된 책을 내고 싶어요. 박완서 선생님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분도 나이 마흔 넘어 등단하셨잖아요.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박완서 선생님처럼 늦게라도 글을 쓸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책과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다는 서점 총각 박승환. 만족감에 도취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도전이 높은 거탑을 이룰 날. 지금의 열정이라면 그리 멀지 않은 듯싶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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