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 미술품 경매 '투명만이 살길'
오프라인 미술품 경매 '투명만이 살길'
  • 아이엠리치
  • 승인 2008.01.2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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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진행되는 오프라인 미술품 경매를 지켜보다 보면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많다. 경매 작품의 출처 불명, 감정을 맡은 감정사 불명, 감정 내역 불명, 추정가 결정자 불명, 추정가 결정 내역 불명, 낙찰자 불명 등 처음부터 끝까지 ‘불명(不明)’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말이 되지 않는다. 경매가 열리는데 경매 참가자로선 알 수 있는 것이 전혀 없다. 그저 오프라인 경매회사 측의 말만 믿고 따라야 한다. 그럼, 지금까지 믿고 따른 경매엔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가.


아니다. 이미 수많은 문제들이 발생했고,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그간 제기된 문제 중 속 시원히 해결된 것이 없고, 오프라인 경매회사들은 해결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에도 각종 칼럼이나 인터뷰 등을 통해 감정이 ‘비공개’로 이뤄지는 점을 꾸준히 지적해왔다. 이에 대해 오프라인 경매회사들은 “감정사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비공개로감정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 KBS-1TV에서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에 방송하는 ‘TV쇼, 진품 명품’에서 감정을 하는 분들은 뭔가. 그 분들은 방송에 출연해 의뢰인의 작품을 두고 ‘이 작품은 어떠하고 어떠해서 감정가 얼마’라고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감정하고, 지상파 방송으로 내보내고 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감정을 하지 않는 감정사를 ‘감정사’라고 일컫는 것 자체부터 말도 되지 않는다. 감정을 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할 정도로 감정에 자신이 없고, 소신이 없다면 감정사로서 자격 자체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감정은 두 번째 문제다. 더 큰 문제는 경매 작품의 추정가를 누가 정했고, 왜 그런 추정가가 나오게 됐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위작 논란에 휩싸인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의 경우에도 추정가 문제가 심각하다.


지난해 5월 한 경매회사가 출처가 불분명한 한 미공개작을 경매에 올린다면서 그 작품의 추정가가 35억~45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가격을 누가 정했는지, 왜 이러한 추정가가 됐는지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은 단 한 줄도 없었다. 그런데도 언론들은 이 경매회사의 말만 듣고 추정가가 35억~45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그 결과 45여억원에 낙찰됐다.  


이런 모든 문제는 오프라인 경매의 투명성 부족에서 기인한다. ‘빨래터’의 경매를 진행한 해당 경매회사 측은 이 작품의 위작 여부를 떠나 작품을 낙찰 받은 사람이 누구이고, 그 사람이 입금한 낙찰대금 45여억원의 내역부터 공개해야 한다. 또, 작품 소유자였던 미국인에게 작품 대금으로 송금한 41여억원의 송금 내역도 밝혀야 한다.


아울러, 세무 당국은 돈이 오간 내역이 정확한지, 세무신고를 바로 했는지를 조사해야 한다. 해당 경매회사 측이 위의 금융 내역만 밝혀도 도의적 책임은 면할 것이다. 미술품 경매에서의 내부자 거래 감시법이 없는 현재와 같은 경매는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막아야 한다. 투명하지 못한 오프라인 경매가 존재해선 안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오프라인 경매회사의 대주주인 A화랑, B은행 등이 있고, B은행이 펀드를 만들어 놓았다고 가정을 해 보자.


A화랑에 종속된 전속화가의 100만원 짜리 작품 1점을 추정가 500만원에 경매에 내놓고, B은행 펀드가 1000만원에 낙찰 받고, 몇 점을 더 이렇게 받았다고 하자. 그 다음엔 언론에 ‘블루칩 화가’니 ‘인기 화가’니 ‘가격 지수가 어떠니’하고 홍보를 해대고, 큰 손들에게 전화를 걸어 ‘회장님, 블루칩 화가인 인기화가 Z모 화가의 작품을 힘들게 한 점 구했는데 보시겠습니까?’하고 부추겨 수십 점을 팔았다면 어떻게 되는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너무나 쉽게 미술품의 가격을 조작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로는 이를 감시할 어떠한 기구도 없다. 모든 것이 투명하지 못해 발생한 문제다.


몇 해 전, 고(故) 이회림 동양제철화학 회장이 평생 모아온 작품 수천 점을 인천시에 기증했다. 그러나 그 작품 중 47%가 위작으로 밝혀졌다. 진정한 미술품 애호가였고, 기부 문화를 실천한 그런 분의 컬렉션에서 절반 가까운 작품들이 위작이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그럼에도 경매회사들은 투명성 제고 방법, 공개 감정 실시 등 개선책을 내놓지 않은 채, 유명인들의 소장품이라며 경매만 강행하고 있다. 부자들이 소유한 작품, 유명인이 소유한 작품이라고 해서 위작이 아니라는 법이 없다. 이 회장의 경우가 그 같은 사실을 방증한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서예 작품 100여 점이 경매로 판매됐다. 이중 대부분의 작품에 위작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그러한데도 경매회사들은 투명성을 보장하는 그 어떠한 조치도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투명성 문제는 지난해 화랑협회 측에서도 심각하게 지적을 했던 사항이다. 당시 협회 측은 경매회사를 소유한 특정 화랑에 종속된 전속화가의 작품 가격을 끌어 올리는 내부자 거래를 감시하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위작 문제. 누군가는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국가는 그런 일 외에도 할 일이 태산같다. 위작 추방은 간단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 위작 여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작품을 파는 행위, 위작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버젓이 작품을 파는 행위, 수십 년 뒤에 진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작품을 파는 행위 등 판매업자들이 자행하고 있는 행위들이 문제인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팔 것이 있고, 팔아선 안 될 것이 있는 법이다.

 

[김범훈 미술품 경매사이트 포털아트(www.porart.com) 대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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