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간 6살아들 위해... 20년간 `속죄의 책 선물`
먼저 간 6살아들 위해... 20년간 `속죄의 책 선물`
  • 북데일리
  • 승인 2006.12.1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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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좋은 책 읽기 가족모임’ 대표 김수연 목사

[북데일리] 6살 난 아들을 화재로 잃었다. 가정이 무너졌다. 책 한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아이... 아빠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20년째 책 보내기 운동을 해왔다.

전국의 산간벽지, 오지, 섬마을을 찾아다니며 마을 도서관을 열어주고 있는 ‘좋은 책 읽기 가족모임’의 대표 김수연(61) 목사의 이야기다. 20년간 후원자 하나 없이 이 사업을 해오다가 2005년 네이버의 도움으로 만든 ‘책 읽는 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를 돌며 책을 나눠주고 있다.

책이 없어서 못 읽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것은 김 목사의 유일한 기쁨이다. “티도 안 나는 지루한 일을 뭐 하러 계속 하느냐”는 주변의 만류도 있었다. “책 대신 음식이나 다른 걸달라”는 주민들을 만날 때면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럴 때 마다 “책을 읽으면 돈을 가장 적게 들이고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책 전도사다.

왜 다른 것도 아닌 하필이면 책일까? 사무실 한쪽에 걸려 있는 18대 조부 김종서 장군의 좌우명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은 저마다 재물을 탐하지만 나는 오로지 자녀가 어질기를 바란다. 삶에 있어서 가장 보람된 것은 책과 벗하는 일이다”

60년간 김 목사의 가슴에 새겨져 있는 말이다. 목숨 같던 아들을 떠나보내는 가슴 아픈 일을 겪은 후 조상이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는 그저 할아버지 가르침대로 살았을 뿐 특별한 일은 한 게 없다며 얼굴을 붉혔다.

문화혜택을 받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책을 나눠주는 일은 김 목사를 살게 하는 유일한 이유다.

“늘 내 아이를 보러가요. 초롱초롱 웃는 아이들 속에 그 애가 있어요...”

스케일 크고, 담대하기로 소문난 그이지만 아이 이야기만 나오면 지금도 목소리가 파르라니 떨린다. 젊은 시절 방송 기자로 세상 곳곳을 누비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그에게 아이의 죽음은 인생을 바꾼 계기가 됐다.

“죽고만 싶었죠. 죄 많은 내가 살아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매일 생각했어요...”

아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스러움은 세상의 모든 즐거움을 놓게 했다. 이기적으로 살아 온 지난날을 떠올리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살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렇게 목사가 됐고 책 나눠 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기자 시절, 선진국의 공통된 발전 배경에 ‘독서’ 라는 요인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은 그는 ‘국민 모두가 책을 읽는 나라’라는 뜻에서 단체의 이름을 ‘좋은 책 읽기 가족 모임’이라고 지었다. 지금이라도 독서의 재미를 깨닫기만 한다면 어른 역시 아이들 못지않게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도서관 개설에 드는 비용은 대략 2천 만 원 정도. 더 많은 책을 갖다 주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되지 않아 이 정도에 그치고 있다. 김 목사 스스로는 여전히 부족하다지만 후원자 하나 없이 어떻게 이 많은 비용을 감당해 왔을까.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정하느냐의 문제 같아요. 아파트 평수 넓히는 게 인생의 우선순위인 사람들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에요”

주변에서 듣고 보니 김 목사는 자신을 위해서는 돈 한 푼 쓰지 않는 자린고비였다. 강원도 산골에서 혼자 사는 그는 열심히 농사를 지어 그것으로 번 돈 까지 책 나눠주기 운동에 보태고 있다.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라 책 외상도 있지만 목표를 세우면 뭐든지 하는 무대포 정신이 있었기에 20년간 이 일을 이어 올 수 있었다.

‘책 읽는 버스’가 가면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아이들, 책을 내려놓자마자 환호하는 아이들을 보는 것은 김 목사의 가장 큰 행복. 단풍 잎 만 한 손으로 “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편지를 보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그다.

아무리 풍요로운 사회가 되도 소외지역은 늘 있는 법. 문화혜택이 취약한 곳에 사는 사람들은 책 한권 제대로 읽어 보지 못하고 삶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런 이들을 위해 김 목사는 밤 낮 없이 움직인다. 책이 필요한 곳에 책을 놓아두는 것은 김 목사의 사명이자, 삶의 이유다.

“지금처럼 행복한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안 되는 것에 미련을 두고 있다면 불행하겠지만 불평과 염려를 놓아 버리는 순간 행복이 찾아왔어요. 책 읽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다 죽는 것이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는 오늘도 100kg이 넘는 육중한 몸을 이끌고 ‘책 읽는 버스’에 올라탄다. 책 할아버지가 오는 날, 산간 오지 아이들의 얼굴이 봄날의 해처럼 환히 빛난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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