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차 `짜이` 마시다 울어버린 사연
인도 차 `짜이` 마시다 울어버린 사연
  • 북데일리
  • 승인 2006.12.11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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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 짜이는 홍차 가루에다 물, 우유, 설탕을 넣고 팔팔 끓인 차(茶)다. 오리지널 인도식이라면 거기에 생강이나 쿠민이라는 향신료가 첨가되기도 한다. 커피 1 프림 1 설탕 2. 일명 다방커피에 길들여진 한국인 입맛에도, 짜이는 달디 달다.

90년에는 기차에서 파는 짜이 한 잔이 우리 돈으로 30원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선 90원으로 올랐다. 식당에선 300원에까지 판매한다. 10년 새 물가가 대폭 상승했지만, 우리나라 찻집에선 한 잔에 6천원이라니 아직은 ‘새 발의 피’ 수준이다.

여기까진 짜이에 대한 기본 정보. 이제 이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자. 문화평론가 조병준은 <와온 바다에서 茶를 마시다>(예문. 2006)에서, 짜이를 마시다가 울어버린 사연을 공개하고 있다. 눈물의 주인공은 그가 아닌 백인 친구다.

조병준이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자원봉사로, 빨래하고 설거지하던 시절. 하루 일과가 끝나고 길가 포장마차에서 산 김치볶음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낯선 백인 친구 한 명이 옆에 앉았다. 그의 이름은 스테판. 껑충 큰 키에 검은 곱슬머리를 지닌, 20대의 캐나다 청년이었다.

함께 저녁식사를 마친 후 둘은 디저트로 짜이를 마셨다. 소주잔보다 두 배쯤 큰 짜이 잔 하나씩을 손에 들고,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생면부지의 두 여행자가 삶의 한 자락씩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았다. 그 때였다. 갑자기 스테판이 눈물을 흘린 건.

“고마워요. 이렇게 행복한 순간이 감사해서, 그래서 눈물 흘릴 수 있게 해줘서…”

따뜻한 차 한 잔과 정겨운 대화가, 타지에서 긴장해있던 그의 마음을 사르르 녹였던 모양이다. 작은 짜이 한 잔이 만들어낸, 놀랍고도 커다란 인연의 순간이었다.

<와온 바다에서 茶를 마시다>는 우리 시대 소문난 문장가 11인의 차 에세이를 담은 책. 조병준 외에도 소설가 한승원, 시인 곽재구, 영화평론가 김영진 등이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차로 맺은 인연, 재미있는 에피소드, 삶의 철학을 풀어놓는다.

순천 해룡면 와온 바다에서 마시는 차는 눈부시도록 찬란했던 ‘청춘’의 기억을 되살려준다(곽재구 ‘와온 바다에서 차를 마시다’). 바쁜 시간 짬을 내 연구실에서 마시는 차는 잠시나마 자기성찰을 할 수 있는 ‘휴식’이기도 하다(강우방 ‘한가로운 가운데 모든 것을 잊는다’).

소설 <초의>(김영사. 2003)로 우리 차를 증흥시킨 초의 스님의 삶을 복원한 한승원에게는 차는 말 그대로 삶의 철학이다. 그는 “차를 마신다는 것은 우주 시원의 힘을 회복하기”이며, “닳아진 우리 생체시계의 건전지에 재충전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다신(茶神)을 찾아서’).

그 외에도 육십 평생 차와 함께해온 순천 금둔사 지허 스님에게는 사람들과 연결시켜주는 ‘다리’(‘하늘이 낸 사람, 땅이 낸 나무’), 도회지의 문화적 기득권을 팽개치고 화계 문덕산에 초당을 짓고 사는 시인 김필곤에게는 풍류세계로 진입케 하는 ‘방편’이다(‘한나절은 차 끓이고 한나절은 시 쓰는 삶’).

차 한잔이 빚어내는 다채로운 빛깔을 띤, 다양한 삶의 변주곡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레 지금 자신의 생을 뒤돌아보게 될 것이다. 저자들에게 있어 차처럼 나를 매혹시킨 것은 무엇인지, 내 삶은 지금 어떤 빛깔을 띠고 있는지 말이다.

그리하여 차를 우리는 고요한 시간처럼, 은은히 퍼지는 차 향기처럼,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차’는 곧 ‘삶’의 다른 말임을, <와온 바다에서 茶를 마시다>를 읽고 나면 깨달을 수 있으리라.

[김보영 기자 bargdad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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