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대학 도서관 갈 생각하니 심장이 뛰어요"
③"대학 도서관 갈 생각하니 심장이 뛰어요"
  • 북데일리
  • 승인 2006.12.1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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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의 방] 경기도 구리시에 사는 석지훈 학생

[북데일리] 좋아하는 분야는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역사, 영미문학에 관심이 많다. 석군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에드가 알렌 포우. 스스로를 ‘광팬’이라 부를 정도의 포우 마니아다.

“에드가 알렌 포우는 공포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초기작들을 보면 위트 넘치는 작품들이 많아요. 제임스 조이스는 물론 좋아하는 작가가 워낙 많지만 그 중에서 한 명만 꼽으라면 단연 포우죠”

국내 문학도 좋아한다. 백석와 이상을 좋아하고 이상에게 조금 더 끌린다. “동방신기는 몰라도 임화는 안다”는 석 군은 월북 작가 임화(1908~1953)의 <현해탄>은 반드시 읽어볼 작품이라며 일독을 권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고고학과 역사학. 진로방향도 이쪽을 염두에 두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을 자주 찾는 석 군은 ‘옛 것’에 끌리는 고고한(?) 취미를 갖고 있다. 각종 음반, 고전 영화, 고전 문학 등을 ‘엄마의 눈을 피해’ 광적으로 수집한다. 컴퓨터에 저장된 수백편의 영화 목록은 영화평론가를 연상케 했다. 오즈 야스지로, 허우 샤오시엔부터 프리츠 랑, 루이스 뷔뉘엘, 장 콕토까지 영화사에 오르내릴만한 거장들의 ‘희귀작’들이 컴퓨터에 가득 차 있었다. 석 군은 “내가 봐도 편집광적인 면이 있다”며 유별난 수집벽을 시인했다. 저장만 한 것이 아니다. ‘19세금’을 제외한 작품은 대부분 봤다. 또래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 베스트셀러, 대중가요가 아닌 고전 영화, 문학작품, 음악에 끌리는 취향은 “독특하다”는 표현만으로는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영화 관람이 성적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 자막을 구하지 못하는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더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다니 오히려 ‘득’이 된 셈이다. 실제로 스스로 ‘번역’을 할 정도의 영어실력을 갖추게 되었다. 영어 실력 역시 논술 실력 못지않게 뛰어난 편이다.

영화를 좋아하게 된 것 역시 ‘책’ 때문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 EBS에서 방영한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1927)’를 본 후, <비주얼 박물관> 시리즈를 읽으며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메트로폴리스’에 대한 소개는 아주 조금 실려 있었어요. 그때는 영화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조금 실려 있는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는 걸 보면 더 많이 소개 된 영화들은 굉장하겠구나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한 거죠”

석 군의 말처럼 모든 단초는 ‘책’ 이었다. 역사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갖춘 것 역시 책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친구들과 경복궁에 갔다. 종종 가이드 역할을 맡는 석 군은 그날도 경복궁 곳곳을 친구들에게 안내하고 있었다. 한 가이드가 다가와 “학생 맞아요?”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답하니 “그런데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았어요?” 라고 반문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박물관, 고승지, 유적지를 좋아하는 석 군은 종종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답답한 것은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은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 그날도 경복궁 안에 있는 반도지(半島池)라는 연못의 위치를 물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동아일보에 난 반도지(半島池) 준설기사를 직접 스크랩했기 때문에 확인해 보고 싶었어요. 간 김에 자리를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답을 얻지 못하고 온 거죠”

결국 이 궁금증은 역사분야의 이름난 저자에게 전화를 걸어 해결 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있는 석 군은 여러 작품이 올라와 있는 해외사이트 ‘마스터텍스트(http://www.mastertexts.com)’까지 들어가 제인오스틴, 에드가 알렌포우 등 유명작가의 작품을 즐겨 읽는다. 모두 영어로 되어 있지만 읽는 데 특별한 불편함은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영어>로 시작된 영어에 대한 관심은 ‘독학’에 불을 지폈고 능수능란한 번역, 영작실력을 갖추게 됐다. 무엇이든 궁금하면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좋아하는 책을 읽지 못하면 병이 나고야 마는 석 군은 정민 교수가 쓴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표현을 빌려 자신의 성격을 설명했다.

“어떤 것에 완전히 미치지 않으면 원하는 만큼 가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편집증 적인 기질이 있지만 책도 영화도 음악도 여전히 많이 부족해요. 기억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자꾸 다시 보고, 읽어야 내 것이 될 수 있으니까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고3 생활을 생각하면 막막해진다는 석 군. 마음 놓고 책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도 1년만 참으면 마음 놓고 대학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독서는 더 넓은 곳으로 가는 열쇠예요. 책 없는 세상은 손바닥만큼 작을 것 같아요. 책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접할 수 있다는 게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대학도서관만 생각하면 심장이 뛴다며 얼굴을 붉히던 석 군은 “르네상스형 인간이 되고 싶어요”라는 포부를 밝혔다. 어른을 기죽게 하는 고교독서광의 미래,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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