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소설 펴낸 22살 고연주
자전소설 펴낸 22살 고연주
  • 북데일리
  • 승인 2006.12.0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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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전소설 ‘라오넬라 새벽 두시에 중독되다’의 저자 고연주

[북데일리] 1984년 1월 ‘13일 금요일’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교통사고 세 번에, 건물에서 떨어지길 두 번. 10살엔 어머니를 잃었다.

동네 어른들의 부름에 달려간 식당. 피 묻은 엄마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엄마를 죽인 남자는 22살. 고아였고,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으며, 주유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22살이 됐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2007학년도 수시2학기 전형으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 합격했다.

이어 자전소설 <라오넬라 새벽 두시에 중독되다>(맥스미디어. 2006)를 내고 어엿한 작가가 됐다. 고연주의 이력이다.

“용서는 내가 아닌, 어머니의 몫”

“그를 용서하는 건 제가 할 일이 아니에요. 어머니의 몫이죠. 이해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어요. 그에겐 술에 취해 벌인 한 순간의 실수였을지도 모른다고. 그 사람도 우리 엄마를 원망하고 있을 수 있다고. 제가 그를 미워하면, 그도 어머니를 욕할까 두려웠습니다.”

어머니의 목숨을 앗아간 남자.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럴 겨를 조차 없었는지 모르겠다. 혼자가 된 고연주는 곧바로 이모 집에 맡겨졌다. 청소를 안 해서, 빨래를 안 해서, 이모부 주머니에 손을 대서, 피딱지가 눌러 붙을 정도로 맞곤 했다. 멍이 가라앉을 만하면 새로운 멍이 생겼다.

16살, 크리스마스 이브에 집을 뛰쳐나왔다. 주머니에 들어있던 돈은 달랑 2천5백원. 친구들이 사는 골방에 머무르며 하루 16시간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1년후 함께 살던 언니와 신촌에서 핀 장사를 시작했다.

둘이 모은 6백만원으로 가게를 계약하러 나간 언니는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18살,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 즉시 전 재산 6십만원을 손에 쥐고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또다시 1년후. 어머니가 그녀에게 남긴 집이 이모의 명의가 됐음을 알고 서울로 돌아왔다.

2년이 걸린 소송은 얼마간의 돈을 지급 받으며 끝이 났다. 재판을 마치고 전셋집을 얻고, 책과 책상, 침대를 샀다. 오리털 이불과 예쁜 유리컵, 꿈꾸었던 전화기도 장만했다. 엄마가 힘들게 번 돈으로 자신만 좋은 집에 살아서, 엄마가 춥게 번 돈을 따뜻하게 써서, 마음이 불편했다. 미안했다.

블로그에 올린 글 토대로, 자전소설 펴내…

한국으로 돌아온 고연주는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하며 간간이 블로그(blog.naver.com/laonella)에 글을 올렸다.

누구나 훔쳐볼 수 있는 공간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지 정확히 1년이 지난, 2005년 6월. 그녀의 글을 눈여겨본 출판사 편집자에게 쪽지가 왔다. 처음엔 “이거, 자비 출판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돈을 내고 읽어보려 할 정도의 글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8월 정식계약을 맺고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갔다.

글이 잘 안 풀리면 일본 뉴에이지 그룹 ‘acoustic café’의 음악을 들었다. 중후한 첼로 선율이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땐 신경숙의 소설을 읽었다. 언제부턴가 달뜬 기분으로는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6개월을 보낸 후, 올 2월 블로그 이름과 똑같은 제목의 책 <라오넬라 새벽 두시에 중독되다>이 출판됐다. 책을 받은 순간, 누구보다 기뻐하셨을 엄마가 떠올랐다. 한글을 배우지 못한 그녀는 딸에게 당부하곤 했다. 생각이 나면 적어 놓으라고. 나는 그리 하고 싶어도 글을 몰라 적을 수가 없었노라고. 그 말이 가슴에 맺혀, 고연주는 무엇이든 적는 버릇이 생겼다.

이제 그녀에게 글은 곧 ‘삶의 기둥’이다. 힘들 때마다, 나이가 들어 글 쓰는 사람이 되려면 더 아파 봐야 한다고 되뇌었다. 더 바닥까지 비참해져라, 생각한 적도 많다. 이로 인해 슬픔은 때론 희열이 됐다. 더 좋은 글을 쓰게 될 거라는 기대감에서였다.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인데, 갈 길이 멀다. 막상 문창과에 합격하고 나니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마음가짐이 돼있는 사람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글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무엇을 쓰고자 하는지조차 모르겠단다.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자위할 뿐.

고연주는 인터뷰 자체를 ‘몸둘 바 몰라’ 했다. 내내 수줍게 웃었고, “답변이 죄다 횡설수설”이라며 미안해했다. 그러나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대목에선 만은 침착하고 당당했다. 소설이란 타이틀이 붙었다고 하나, 자전적 색채가 강한 이야기. 솔직해도 ‘너무’ 솔직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 같이 답했다.

“숨기는 것과 드러내는 것에 대해서는 중학교에 올라갈 때 이미 고민을 했지요. 사생아라는 타이틀이 평범하지는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감추면 제가 그런 사실들을 창피하게 여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어떻게 태어났든 낳아주셔서 감사하고, 어머니가 누구보다 자랑스러운데 말이죠. 감추면 감출수록 나쁜 일이 되어가는 듯 한 기분 아세요?”

집필을 마치자마자 이집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고연주. 그녀는 지금 7개월간의 아랍 여행기를 정리 중이라고 한다. 다음 책 속에서의 저자는 조금 덜 아프길, 조금 더 행복하길 간절한 바람으로 기다려 본다.

"이천육년 이월 십이일 새벽 두시, 나는 잠들지 못한다. 그녀의 인생에서 삶의 아픔을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조용히 혼자 읊조린다...죽지 말아요, 당신.”

고연주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알게 됐다는, 시네마서비스 김인수 대표이사가 <라오넬라 새벽 두시에 중독되다>에 적은 추천사다. 블로그 혹은 책을 통해, 그녀의 글을 읽은 독자만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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