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명 위해서라도 책은 만들어져야"
"단 한명 위해서라도 책은 만들어져야"
  • 북데일리
  • 승인 2006.12.0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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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006 올해의 출판인’ 본상 수상한 지호출판사 장인용 대표

[북데일리] 인터뷰 전, 자료조사를 위해 인터넷 뉴스검색창에 지호출판사와 장인용을 각각 쳐 넣었다. 나온 결과는 총 100여 건. 그나마도 찾고자 하는 대상이 아닌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10년 넘게 인문.과학 도서를 전문으로 발간해온 출판사와 그 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터무니없이 적은 보도횟수다. 기초학문에 대한 독자와 언론의 무관심을 보여주는 반증이라 하겠다.

5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열린 ‘2006 출판인의 밤’(한국출판인회의 주최)에서 장인용(49) 대표는 ‘올해의 출판인’ 본상을 수상했다. 시장(市場)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제 길’을 걸어온 노고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앞으로도 쭉 ‘가시밭길’을 헤쳐 나가야 할 그와 함께, 지난 출판인생을 반추해봤다.

인문.과학 서적, 잘 나가야 5천부...

장 대표는 1983년 성균관대 중문과를 졸업하고, 국립대만학교 역사연구소에서 중국미술사를 공부했다. 귀국 후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근무하며 ‘미국박물관소장 한국문화재’, 영문 잡지 ‘코리아나’ 등을 펴냈다. 출판에 눈을 뜬 계기였다.

본격적인 책 만들기는 92년 뿌리깊은나무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됐다. 3년간 착실히 기본을 다지고, “작은 것을 크게 깨닫는 즐거움을 독자에게 선사하기 위해” 95년 직접 지호출판사를 설립했다.

98년 IMF가 터지면서 출판사는 위기에 봉착했다. 문 닫을 직전까지 간 상황, 장 대표의 눈에 창고에 남은 종이 몇 연(‘연’은 종이를 세는 단위. 1연=전지500장)이 들어왔다. 책 5,6권은 만들 수 있는 양이었다. 의지가 되살아났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자’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현재, 그는 그의 말대로 "베스트셀러 한 권 없이, 10년 동안 살아남았다".

인문.과학 서적은 많이 나가야 5천부. 이 중 유전학 관련 서적은 1천부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호에서 펴낸 도서 중 판매부수가 만부 대에 접어든 건 청소년을 위한 수학교양서뿐이었다.

“독자가 필요로 하는 책이 없다는 건 슬픈 일입니다. 수백. 수천 년 후, 단 한사람이라도 찾을 이가 있다면 (그를 위해) 책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리 좋지 않은 경영 상태에도 불구하고, 장 대표가 ‘팔리지 않는’ 분야를 파고드는 건 이 때문이다.

“비주류인 내가 둥지 틀기엔 출판계가 딱!”

“제가 원래 재주도 없거니와 삐딱하기까지 해서, 비주류로 살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둥지를 틀기엔 출판계가 딱인 것 같습니다.”

수상 소감에서 장 대표중 일부다. ‘비주류’ 성향은 출판사명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아, 아무 뜻이 없는 어조사 둘(지호.之乎)을 이어 붙였다.

하지만, 출판계에서 벌인 활동은 주류에 속한다. 그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 대표간사,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 사단법인 한국출판인회의 출판위원장, 독서진흥위원장, 와우북페스티벌 특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94년 창단된 출판사 사장 45명의 모임. 3.40대 출판인들이 모여 연구, 토론을 하며 전문성을 높이는 자리다. 매월 첫 번째 수요일 갖는 월례모임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지속해 왔다고 한다.

장 대표는 이 같은 출판사간 팀플레이에 관심이 많다. 2002년 그는 서로 다른 출판사들이 낸 책을 모아서 한 세트(‘아름다운 지삭의 책 한 권’(한길사)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청어람미디어) ‘서재 결혼시키기’(지호))로 판매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시도 자체가 최초였다. 2004년엔 그린비, 푸른역사 등 소규모 인문사회과학 12개 출판사의 ‘공동 마케팅’에 참여했다. 이들은 격월간 무크지 ‘알책’을 창간, 함께 도서를 홍보하고 있다.

임프린트 전성시대. 출판사가 날로 거대해져가는 현 시점에서, 소규모출판사들의 ‘상부상조’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장 대표는 “상황이 어려울수록, 힘을 합쳐 헤쳐 나가야한다”고 역설했다.

질문에 답하는 그의 말투는 어눌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신념만은 강직하고 올곧았다. 장 대표가 2004년 모 언론에 기고한 글은, 출판인으로서 그의 소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책을 만드는 일의 시작은 책이다. 죽간에 쓰인 글자들이 엮어져 책이 되고, 또 그 책 위에서 다른 책이 탄생한다. 선사시대부터 여태까지 이어왔던 인류의 생각의 다름은 여태까지 그 많은 책들이 존재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든 책은 책을 읽음으로써 탄생한다.”

그 역시 많은 책을 읽어왔다. 출판일을 시작하기 전엔 1년에 200여권 정도를 독파했다고 한다. 특히 대학 1학년 말에 접했던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4~5번을 내리 읽었다. 장 대표가 만든 책에, 그간의 독서가 밑바탕으로 깔려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그 책이 또 다른 책을, 그리고 사람을 만든다. 물고 물리는 순환고리는 어느 하나가 빠지는 순간, 끊어질 수 밖에 없다. 장인용 대표가 책을 만드는,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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