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혜경을 만든 `스승 황순원의 한마디`
소설가 이혜경을 만든 `스승 황순원의 한마디`
  • 북데일리
  • 승인 2006.12.01 11: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제37회 동인문학상 수상한 소설가 이혜경

[북데일리] 소설가 이혜경(46)이 경희대 국문과에 입학한 건 그야말로 ‘행운’이었다. 성적에 맞춰 얼떨결에 진학한 학교에서 그녀는 스승 황순원을 만났다. 그와 친밀한 교분을 나눈 건 아니었다. 이혜경은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고, 황순원은 말수가 적은 교수였다. 하지만 어느 날 스승이 건넨 한 마디는 이혜경이 대학 4년을 버티는 힘이 되었다.

힘들고 외로워서 학교를 그만둘 고민까지 하던 2학년 때. 수업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서던 황순원이 문득 뒤를 돌아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

“요즘도 시 쓰나.”

1학년 때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와 자작시를 주고받은 이야기를 적은 수필을 과제로 제출한 적 있었다. 스승은 그 내용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었던 것.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그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이혜경은 ‘이를 악물고’ 학교를 다녔다.

“고인이 되신 우리의 스승 황순원 선생도 지금 여기서 이혜경 작가의 어깨를 두드리고 축하하고 계실 것입니다.”

단편 ‘틈새’로 제3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에게, 대학 선배인 시인 정호승이 건넨 축사다. 스승은 생전처럼, 사후에도 여전히 그녀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계신 모양이다.

국내외 유수문학상 수상 “여전히 상은 쑥스럽다”

이혜경은 1982년 ‘세계의 문학’에 중편 ‘우리들의 떨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그 후 25년간 펴낸 소설이 장편 1권 단편집 3권, 과작이다. 하지만 그녀는 작품활동기간에 비례할 때 결코 적은 수는 아니라고 말한다. 12년이란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 들어가던 해에 등단했어요. 국문과 가니까 사람들이 전부 글을 쓰길래 저도 쓰고, 투고를 하기에 또 따라 냈죠. 습작기가 거의 없었어요. 운이 좋았죠. 작가란 무엇인지, 글을 쓴다는 게 어떤 건지, 등단 후에야 고민을 시작했는데. ‘어머, 내가 큰일 저질렀구나. 이게 쉽게 할 일이 아니구나.’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한동안 (글을) 안 썼어요.”

졸업 후 국어교사, 여성잡지 기자로 활동하던 작가는 95년 장편 <길 위의 집>(민음사. 1995)으로 ‘재등단’ 했다. 외도를 하는 동안에도 글에 대한 미련은 쉽사리 떨쳐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 이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절박’했다.

이 소설로 같은 해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고, 이후론 승승장구. 98년 한국일보 문학상(‘그 집 앞’) 2002년 이효석 문학상(‘꽃그늘 아래’) 현대문학상(‘고갯마루’) 그리고 2004년 독일 리베라투르상(‘길 위의 집’)까지, 국내외 유수의 문학상을 휩쓸다시피 했다. 올해엔 동인문학상과 함께, ‘피아간’으로 이수문학상을 수상하며 ‘2관왕’의 영예를 누렸다.

화려한 수상경력, 이혜경은 자랑스럽기보다 쑥스럽다. 묵묵히 글을 써온 다른 작가들에 대한 미안함도 크다. 작가는 여럿인데, 상은 한정됐으니 누군가에게 집중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단다.

하지만 그녀의 글쓰기 인생에서 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특히 98년 받은 한국일보상이 지닌 의미는 각별하다. 작품집 <그 집 앞>(민음사. 1998)을 출간하고 슬럼프에 빠졌던 작가. 당시 비슷비슷한 경향의 소설이 많았고, ‘구태여 나까지 (같은 글을) 쓸 필요가 있나’ 회의가 들었다. 인도네시아로 여행을 떠나면서 마음 속으로는 이미 문학을 버리기도 했다. 그곳에서 전해들은 수상소식은 뜻밖의 낭보. ‘계속 써야겠구나’ 집필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상은 고비를 맞는 순간마다 주어져, 그녀를 글에 ‘옭아맸다’.

내년에 집필할 장편에도 올해 수상은 큰 도움이 됐다. 글 쓸 땐 작가, 안 쓸 땐 백수인 전업작가 생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단편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늘 진이 빠져 버린다. 남들에 비해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이혜경은 장편에만 매달릴 수 있을까 노심초사 중이었다고 한다. 적지 않은 상금을 받았으니, 이제 한시름 덜고 집필에 전념할 수 있겠다.

부모님께 전수 받은 곰삭은 언어, 가족은 영원한 화두

“언어를 경제적으로 활용해 최대 효과를 내면서, 고전적 단편 미학의 극한까지 보여줬다.” “일상생활에서 안 쓰는 말들을 많이 써서 아쉬웠고, 너무 공들여 쓰다 보니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도 있다.”

동인문학상 최종심에서 심사위원들이 ‘틈새’에 대해 내린 평이다. 이혜경의 소설이 지닌 강점이자 단점은 쉽게 접할 수 없는 옛말들. ‘데설궃다’ ‘감때사나운’ 등 일반인에겐 낯선 언어들을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접하며 자랐다. 작가는 부모님이 마흔 넘어 보신 8남매 중 막내다.

단지 자신에게 익숙한 단어여서 소설에 사용하는 건 아니다.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도 이를 고집하는 건, 점차 사라져가는 우리말이 안타까워서다. 얼마 전 모임에서도 ‘냇내(연기 냄새)’를 아는 이가 거의 없어 충격을 받았다. “참 아름다운 말들이, 써주지 않으면 없어지는 거잖아요. 많이 써줘야 (단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동료작가의 소설을 읽다가, 사전을 뒤적이다가, 예쁜 단어가 나오면 다음 작품을 위해 꼭 챙겨둔단다.

곰삭은 언어 외에도, 그녀가 소설에서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 ‘가족’이란 화두다. 가족은 한 사람이 태어나서 사회화를 겪는 첫 집단이고, 거기서 습득된 것들이 평생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작가 역시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음에도 각기 다른 심성을 지닌 형제들을 통해, 인간의 다양성을 배울 수 있었다. 그들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간접 체득한 가지각색의 삶은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가족은 또한 의구심의 대상이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 간엔 우애 있고. 세상이 말하는 통념상의 가족이, 아무리 둘러봐도 주위엔 없었다. 작가의 가정이 특별히 불행한 건 아니었지만, 사회에서 ‘판타지적’으로 그려지는 가족에 대한 반감도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혜경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물어뜯고 상처 입히고 그 와중에도 서로 의지하는 현실의 가족과 쏙 닮아있다.

진실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지는 약자의 이야기에서 더욱 강해진다. <틈새>(창비. 2006)에 실린 단편 ‘물 한모금’.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그린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권력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잖아요. 매스컴을 통해, 정치를 통해... 정말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들. 말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하고 싶었어요.”

88년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고, 동네에서 ‘새까맣고 조그만’ 동남아시아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면서부터 쓰고 싶던 글이다. 93년 인도네시아 여행을 다녀온 후, 그들이 더욱 유심히 보였다. ‘더운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추위를 어떻게 날까’ ‘느릿느릿하게 살던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취재를 다녔단다.

인도네시아는 2000년에 한번 더 찾았다. 한국국제협력단 소속 민간사절로 족카르타에서 2년간 현지 대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단편 ‘그림자’에 등장한 네트워커란 직업은 이때 알게 되었다. 네트워커는 외국에 나가있는 한국인을 위한, 한국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응급의료시스템. 기관지를 다쳤던 작가 역시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드러나길 꺼리는 직종이라 취재는 많이 하지 못했다.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쓴 작품이기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단다. 늘 ‘손품’ 전에 ‘발품’을 파는 그이기에 더욱 그렇다.

“퇴고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신발만 보면 물어뜯고 싶어하는 강아지처럼 내가 쓴 글만 보면 뜯어고치려는 본능으로 문장을 고치고 제목을 고친다”.

퇴고는 시간이 허락되는 한, 몇 번이고 계속한다. 부실하던 글을 다듬어가는 과정이 힘겹기는커녕, 마냥 행복하단다. 집필 중에도 20매쯤 쓰다가 원점으로 돌아가고, 50매쯤 쓰다가 접길 반복한다. 그래서 그녀의 노트북엔 같은 제목에 1,2,3 번호만 다르게 달린 문서들이 즐비하다. 하도 여러 번 고치다 보니, 나중엔 도대체 어떤 게 원본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작가가 천직이다 싶은데, 뜻밖에 “글이 내 직업이라는 생각은 안 한다”고 말한다. 예쁘지도, 착하지도 않은 그녀가 유일하게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글쓰기일 뿐. 글은 자신에게 주어진 몫, 해야만 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쓰다 보니까 생활까지 영위하게 된 것이라고. 달리 말하면, 이혜경에게 글쓰기는 직업이 아닌 ‘숙명’인 셈이다.

주어진 운명이라고 해서, 글이 매번 쉽게 써질 리 만무하다. 집필을 하다가 막힐 땐,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춤을 춘다. “머리를 좀 흔들어줘야 할 것 같아서”라고 변명(?)하는 작가의 수줍은 미소가 사랑스럽다. 장기적으로 글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땐 도서관에 가서 서가 사이를 돌아다닌다. 책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내가 보기엔 나쁜 책일 수 있지만 누군가는 여기서 감동을 얻을 수도 있겠지. 내가 쓰는 보잘것없는 글도,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 수 있을 거야.” 용기를 얻는단다

인터뷰 내내 작가는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지만 의견을 피력할 때의 어조는 단호하고 강건했다. 책을 안 읽는 요즘의 세태에 대한 발언에선 더욱 그러했다.

“이윤기 선생님 소설 중에 이 대목을 좋아해요. ‘알고 가야 하지 않겠냐.’ 인생 참 짧잖아요? 어영부영 살다가 어영부영 가면 너무 덧없죠. 왜 태어났는지, 삶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알려면 책을 읽어야 돼요.”

중요한 건 책을 ‘얼마나’ 읽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느냐다. 지식은 많지만 지혜가 없는 사람들에게 책은 무용지물이 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른 몸. 선한 얼굴을 지닌 이혜경은 전형적인 ‘외유내강’의 작가다. 그녀는 늘 약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분노해야 하는 상황에선 참지 않는다. 인터뷰 중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건을 언급하는 작가의 눈엔 ‘노기’가 서리기도 했다. 그녀의 유하지만 옹골찬 성격이 어떤 작품을 탄생시킬지,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북데일리 고아라 기자] rsum@naver.com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