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때문에 집 무너질라` 폐교로 이사
`책 때문에 집 무너질라` 폐교로 이사
  • 북데일리
  • 승인 2006.11.28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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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광의 방]충북 제천에서 지적박물관 운영하는 리진호 관장

 

[북데일리]독서광의 노년은 분주하다. 몸만 늙었을 뿐, 책을 향한 열정은 여전히 청춘이다. 책 수집에 미쳐 본이라면 그 재미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것은 중독이다. 수집과 기록은 독서광의 전부이자, 모든 것이다. 늙은 독서광은 선풍기와 환풍기 바람을 쏘이며 책을 돌본다. 책 앞에 서면 어떤 시름이라도 단숨에 잊는다. 책에 미치던 매서운 집념이 시들해 질 때도 됐건만, 젊을 때 보다 더 ‘팔팔하게’ 책을 읽고 사 모은다.

 

충북 제천시 금성면 양화리 옛 양화초등학교자리에서 지적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리진호(75) 관장이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당신네 책 때문에 아파트가 무너질 것 같으니 이사를 가달라”는 항의에 내몰려 1만2천권의 책을 싣고 이곳에 내려와 지적박물관을 연 그는 성실한 독서광이자 극성스런 수집광이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지적공사에서 23년을 근무한 후 1999년에 정년퇴임한 리 관장은 30여 종의 책을 쓴 학자다. 스스로를 ‘측량기술자’라 부르는 그의 저술 활동은 크게 기독교 역사분야, 지적 분야로 나뉘어 진다. 수지타산 맞지 않는 분야에 넋이 나가 있다 보니 책을 내준다는 출판사가 없어 스스로 ‘우물’이라는 출판사를 차려 책을 냈다. 인세는 꿈도 못 꿨고 유명세를 타지도 않았지만 지적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전문가가 됐다.

 

그렇게 논문을 쓰고 책을 쓰는 동안 모아온 책만 1만6천권. 환풍기와 선풍기를 돌리며 보관하고 있는 책들은 ‘피’ 같고 ‘몸’ 같은 그의 분신이다. 이 많은 책들을 둘 곳이 없어 박물관을 연 것이 엊그제 같은 데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하였는가를 기록하여 두자. 이는 이 세대의 의무요 사명이니 이를 게을리 하면 부끄러운 조상이 되는 것이다”

 

지적박물관 입구에 써 있는 ‘리진호 어록’ 에는 기록과, 수집을 향한 그의 거침없는 열정이 녹아있다. 이곳에는 리 관장이 수십 년 간 수집해 온 지적 관련 서적, 향토지와 백년사, 기독교 분야의 책과 자료들이 비치되어 있다. 한국 최초의 성경인 ‘예수성교 누가복음 전서’(1882년) 등 성경책 500여권도 진열 중이다. 개인이 모아온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어마어마한 분량이다.

 

 

수집 비결을 물으니 “책값은 다른 것에 비하면 비교적 싸. 그러니까 여유 남는 게 있으면 모두 책을 샀지. 오늘도 33만원어치나 청구했는데....”라고 ‘천연덕스럽게’ 답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책 사는 데 드는 돈은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그는 밥 먹고 운동하는 것 빼고는 아무런 취미가 없으니 책을 더 많이 읽을 수 있다고 자랑한다.

 

“여전히 왕성하게 책을 구매하고 있어요. 그것이 내 생활의 다요”

 

리 관장의 어린 시절 꿈은 작은 마을의 이장이 되는 것이었다. 심부름도 하고 농사계장도 하면서 조용히 책이나 읽고 살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었는데,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농대를 졸업하고 지적공사에서 측량기술자로 일하면서도 책 욕심은 멈춰지지 않았다. 23년간 대한지적공사와 지적기술 연수원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도 끊임없이 읽고 모았다. 원하는 책이 있다면 섬도 건넜고, 비행기도 탔다. 전국 곳곳에 생긴 지원군들은 “00라는 책이 있는데 사겠소”라고 전화로 물어왔고 그 때마다 두 말 없이 돈을 송금해 이처럼 책이 불어났다.

 

리 관장에게는 특별한 책읽기 원칙이 있다.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를 정한 뒤 그에 필요한 책을 읽는 방식이다. 남의 연구를 따라하는 것을 가장 기피하는 그는 2005년에 ‘스스로’ 출간한 <책 사냥 발자취>(우물. 2005)를 펴 보이며 “<책 사냥꾼>이라는 제목에는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는 뜻이 담겨있지요. 나의 연구는 늘 새로운 걸 발굴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목표를 정하면 그에 필요한 모든 책을 사서 읽곤 해요”라고 했다.

 

수집 하는 것에 그치면 장서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식은 활용할 수 없기에 읽은 것만큼 쓰고,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30권에 달하는 리 관장의 저작물은 학문을 향한 불타는 집념과 열의의 산물이다.

 

(사진 = 고아라 기자)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2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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