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급권 도입해야 미술 시장이 산다
추급권 도입해야 미술 시장이 산다
  • 아이엠리치
  • 승인 2007.08.0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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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EU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EU측이 ‘추급권(追及權.Artist’s Resale Right)’을 제기하고 나섰다. 추급권은 지난 2001년에 체결된 ‘베른협약’에 포함된 지적재산권(IPR)과 관련한 규정이다.


내용인 즉, 미술 작품이 전문 중개상을 통해 재판매될 때마다 작가 또는 상속권자가 작가 사후 70년까지 판매액의 일정한 몫(로열티)을 받는 권리다. 단, 개인 간 직접 매매나 개인이 공공미술관에 판매할 경우엔 해당되지 않는다.


미술 작품에 추급권이 도입된 것은 작품 판매액에 따라 지속적으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소설가나 작곡가 등 다른 예술 분야와 달리 한 번 작품을 팔면 추가 수입을 기대할 수 없는 화가 및 미술 작가의 특수성을 감안한 제도다. 현재 EU와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적용되고 있다.


만일 국내에서도 추급권이 인정되면 전문 중개상(화랑이나 경매회사)을 통해 미술품을 구입할 경우 구입자는 일정한 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이에 대해 화랑과 경매회사 등 오프라인 미술품 유통업체들은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들은 추급권을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화가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즉, 추급권이 인정되면 미술품 거래가 공개가 아닌 비공개를 통해 주로 이뤄지게 된다는 것, 이 때문에 미술품의 원활한 유통이 어려워지면 미술품 시장이 위축될 수 없게 돼 그 피해가 결국 화가에게 돌아간다는 얘기다.


이들은 더불어 “개인 간 직접 매매엔 추급권이 적용되지 않으면서 왜 화랑 등을 통한 매매에만 적용되느냐”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EU의 요청이 없어도 반드시 추급권이 도입돼야만 한다. 국내에서 수십억 원대에 팔리는 미술 작품은 거의가 유작(遺作)이다. 현재 故 박수근, 이중섭 화백 등의 작품이 그렇게 높은 가격에 팔리지만 정작 그분들은 생전에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분들의 후손들은 어떤 덕을 보고 있는가.


화가는 살아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결국 자식 같은 작품을 헐값에 넘기게 된다. 당시 저렴하게 싹쓸이 해놓은 작품을 그 화가의 사후에 비싼 값에 팔아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일부 대형화랑과 큰 손들이다.


원로화가 천경자 화백(83)의 작품 중엔 지난 1980년에 호당 20만원에 거래되다가 현재 호당 가격이 4000만원에 판매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정작 돈을 번 것은 화가도, 개인 미술품 투자자도 아니다. 과거에 호당 20만원 보다 낮은 가격에 확보해 둔 작품을 지금 오프라인 경매에서 200배나 오른 가격에 팔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화랑과 오프라인 경매회사들이다.


이래선 어떤 화가가 작품에 매진할 수 있을까. 내일 먹을 끼니 걱정부터 해야 하는 화가는 정말 ‘천재’가 아니고선 좋은 작품을 그려낼 수 없다. 이는 국내 미술계로 하여금 제자리 걸음만 계속하라는 얘기다. 추급권 도입은 거래의 투명성 확보를 이루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현재 국내 미술품 유통 시장에선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대형 화랑들이 작품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화가들과 전속계약을 맺은 뒤 작품을 저가에 공급받는다. 그 다음 이들의 작품을 오프라인 경매에 올린 뒤 자기들끼리 주식에서 작전을 펼치듯 가격을 끌어 올려 높은 가격에 낙찰시킨다. 이렇게 되면 이 화가의 작품은 높은 가격대가 형성된다.


이후 화랑을 찾은 미술품 투자자들에게 화랑 측은 “얼마 전 경매에서 볼 수 있었듯이 이 작가의 작품 가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비싸게 팔 수 있다. 반면 추급권이 도입되면 어찌될까. 화가에게 로열티를 줘야 하므로 이 같은 사기성 판매를 벌기가 그만큼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처럼 추급권은 화가에겐 작품에 몰두할 기반을, 미술 애호가와 투자자에겐 좋은 작품을 제값으로 주고 구입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준다.


좋은 작품이 더 많이 나오고, 돈이 바른 길을 찾아갈 때 미술 시장은 퇴보할까, 전진할까?


[김범훈 미술품 경매사이트 포털아트(www.porart.com) 대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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