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즈 네신 <당나귀는 당나귀답게>(푸른숲. 2005)
아지즈 네신 <당나귀는 당나귀답게>(푸른숲. 2005)
  • 북데일리
  • 승인 2006.09.08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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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냥씨의 숨은 소설 찾기 1 - 아지즈 네신 <당나귀는 당나귀답게>(푸른숲. 2005)

소설들이 속한 국적을 떠나, 발행 시기에 관계없이 숨은 소설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끄집어내어 쌓인 먼지를 깨끗하게 잘 털어낸 후, 많은 분들의 손이 가지 못한 채 책장이 바라지 않도록 통풍이 잘 되는 곳에 곱게 올려두고 싶은 마음이 들어 글을 시작합니다. 책들을 끄집어내는 기준은 책에 대한 이야기일수도, 책에 얽힌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얘길 하든 당연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 처음 사람을 소개받을 때의 설렘처럼 읽어 보시고, 마음이 동하면 편하게 직접 책을 찾아 읽어보는 수고로움 한 번쯤 해보시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되도록 장르에 편중되지 않게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올해는 인문/사회/경제/역사 분야 등의 책을 꽤 읽었고, 많은 지적소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부쩍 자란 세계관을 스스로 느낄 수 있어 대견하고 보람찬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계란 노른자 같은 책들을 읽다가 어느 순간 목이 메면 주저 없이 휴식을 취해줘야 합니다. 충분히 물을 마셔 주어야 또 다시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럴 때면, 차를 한 잔 하며 곳곳에 놓인 책을 집어 들곤 하는데요. 이럴 때 티푸드 대신 집어든 책은 맛깔스러운 녀석이어야 합니다. 고백하자면, 틈날 때마다 쉴 때마다 사정없이 뽑아드는 책을 보면 거의 소설입니다. 들켰습니다. 편애인가요? 저의 소설 분야에 대한 사랑과 지지는 책을 읽어온 이래 여전히 열렬하고도 뜨겁습니다. 하필 왜 소설이냐고요? 내 삶이 아닌 또 다른 삶을 담은 매력적인 서사에 푹 빠져드는 것은 비단 저뿐만의 얘기가 아니겠지요.

나라마다 음식의 맛이 다르듯이, 당연히 나라마다 책의 맛도 다릅니다. 물론, 번역이라는 우리 소스와도 얼마나 기찬 조합을 이루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요. 이미 많이 알려진 미국과 일본, 그리고 프랑스의 음식들과 그 소설들을 대하는 맛도 좋지만, 그 이외의 나라 소설을 접하는 일은 별미로, 신선한 흥분을 가져다주곤 합니다. 이국적 향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까, 입 안 가득 느껴질 풍부한 맛은 또 어떨까.

터키입니다. 얼마 전 오르한 파묵이 올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오르한 파묵은 아르메니아 대학살과 쿠르드 민족에 대한 박해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여 터키에서 큰 처벌을 받는 ‘국가 모독죄’로 기소된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그러고 보니 제가 접한 터키의 작가들은 모두 공통점을 가지고 있네요. 오르한 파묵, 야샤르 케말, 그리고, 아지즈 네신. 이들은 모두 존경받는 터키의 작가로 민족과 문명 간의 충돌, 여성, 소수민족, 소시민 등 어려운 문제들에 서슴지 않고 칼을 빼들었고, 사회와 활발히 소통하려 노력했던, 혹은 노력하고 있는 작가들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책을 쓸 때마다 내란 선동이나 좌익 활동 등의 죄목으로 대략 250번 가량의 재판을 받고, 감옥에 들락거려야 했었다는 아지즈 네신! 그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를 여러분 앞에 곱게 놓아드립니다. 읽으며 감탄해 마지않을 수 없었던 작가입니다. 실제로 알레고리의 이중구조를 절묘하게 느낄 수 있는 이야기는 드물기 때문에 더욱 반가웠습니다. 작가의 풍자는 삼엄하고 살벌한 권력과 가냘프고 열악한 현실 위에 선 풍자라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옵니다. 아지즈 네신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는 총 열 네 편의 우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쉽기도 하고, 성인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메시지가 강렬한 책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촌철살인이 곳곳에 유리알처럼 박혀 있어 현실에 비추어 볼 수도, 강한 눈부심을 느낄 수도 있는 책입니다.

‘君君, 臣臣, 父父, 子子’ 공자의 ‘정명사상(正名思想)’입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부모는 부모답게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이 사상은 누구든 자신의 위치에 따른 올바른 이름이 있고, 그 이름에 걸맞게 행동해야 함을 뜻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주어진 본분을 올바르게 실행해 나가면 조화로운 세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훌륭한 조련사가 당나귀를 조련시켰습니다. 당나귀는 말을 하게 되고, 당나귀 쇼는 대단한 성공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말하는 당나귀를 귀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사람들은 말하는 당나귀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자 사람들은 당나귀 울음소리를 똑같이 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 또한 유행처럼 번집니다. 그리하여 당나귀는 사람을 태우는 일을 잊어버리고 말을 하기에 바쁘고, 사람은 당나귀 울음소리를 내기 바빠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리게 되어 사회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행간에는 풍자가 넘쳐납니다. 이 단순한 이야기 구조는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고, 무조건적 유행에 따르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기도 합니다. 여치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부러운 당나귀가 여치처럼 되기 위하여 매일 이슬만 먹다가 앓아눕게 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겠지요.

또한 양들을 잡아먹기 위한 늑대의 치밀한 계략에 속아 ‘양주의(이데올로기)’를 앞세워 ‘대양제국’을 세우게 되는 이야기, 거세된 황소가 우두머리로 뽑히게 된 이유, 위대한 똥파리의 선구적 죽음, 어느 무화과 씨의 꿈 등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는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우리 사회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기도 합니다. 사실,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풍자는 여러 가지 사회의 문제들로부터 발생하는 것이니까요.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점이 풍자문학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말대로 ‘세계를 웃음거리가 되는 것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지요.

이 작품 외에도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작품으로, 체면치레에 급급하고 위선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세계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풍자한 <제이넵의 비밀편지>나 주민등록이 없는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기구한 운명이 된 <생사불명 야샤르> 등이 있으니 접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정신이 결여되어 있는 이 시대에 재미있는 이야기로 올바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아지즈 네신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를 여러분 앞에 꺼내 놓습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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