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헌책방 풍경, 그곳엔 책 익는 향기
2005 헌책방 풍경, 그곳엔 책 익는 향기
  • 북데일리
  • 승인 2005.07.29 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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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청춘 고교생들의 우상이 됐던 인기 영화시리즈 `고교얄개`, 80년대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1대 `뽀미언니` 왕영은, 마법사 만화 붐을 일으켰던 `요술공주 샐리`...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위치한 대양서점 2매장. `촌스러운` 물건들과 빛바랜 헌책으로 가득찬 그곳에 가면 어린시절 추억 속에 빠져볼 수 있다.

주인 정태영(33)씨가 일하는 계산대에는 종이를 오려 인형과 옷을 만들었던 인형놀이판, 만화 `은하철도999`의 메텔과 철이가 등장하는 종이딱지, 요술공주 샐리가 주인공인 연습장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오른쪽 벽에는 `고교얄개` 시나리오와 40년대 서울신문 원본도 걸려있다. `북조선에 중공군` `중공 요구를 용인?`와 같은 기사제목들이 당시 상황을 잘 보여준다. 60여년전 신문이 얼룩 하나 없다는게 놀라울 뿐이다. 시나리오는 아는 사람이 정씨에게 선물한 것이다.

책장 한쪽엔 `주간한국`(81년 7월 26일)이 눈길을 끈다.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영화배우 정윤희가 표지모델이다. `보신탕의 사회경제학` `미 평화봉사단 15년, 파란 눈의 친구들이 돌아간다`라는 기사제목이 흥미롭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걸려 있는 LP판 얼굴은 왕영은이다.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가 만들어지면서 1대 뽀미언니를 맡았던 왕영은의 인기는 거의 이효리급이었다. 자켓 디자인을 보니 캐롤송인 듯하다.

전시물들을 구경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들어와 인사를 하자 정태영씨가 "많이 바뀌었죠?"라고 말을 받는다.

정씨는 "헌책방이 단지 책만 사는 곳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책만 살 목적이라면 인터넷을 통해 살 수 있다는 것.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는 아날로그 분위기와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점이 큰 매력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헌책방하면 항상 골목이 덧붙여 떠오른다. 이에 대해 정씨는 "아픈 현실"이라고 말한다. 다른 가게와 달리 책방은 `넓은 책 공간`이 필요하다. 판매되는 것과 상관없이 기본 목록은 구비돼 있어야 한다. 그러나 헌책방 수익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로에서 벗어난 골목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단다.

`헌책방`에 대해서 정태영씨는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갑자기 `가로쓰기와 세로쓰기`를 꺼낸다. "세로쓰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가로쓰기를 읽지만, 가로쓰기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은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일수록 새책방도 많이 찾는다는 논지였다. 그런데 새책방을 찾는 사람들은 헌책방을 거의 찾지 않는단다. 헌책방 사람들의 독서폭이 훨씬 높다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정씨는 "책읽는 것은 밥먹는 것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허기지면 밥먹는 것처럼 정신이 배고프면 책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게 아니냐는 것. 독서를 취미로 생각하는 이들에 대한 그의 반론이었다.

대양서점 2매장은 책이 종류별로 잘 정리돼 있는게 특징이다. 한 사람이 간신히 지나갈 만한 다른 헌책방과 달리 책장간 간격도 꽤 넓다. 그리고 손때 묻은 골동품들이 책보는 재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그곳에 가면 아주 오래된 듯한 향기가 난다. 02) 394-4853

(사진 = 대양서점내 풍경, 서점 주인 정태영씨) [북데일리 김대홍 기자]paranthink@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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