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실현]①'진짜 프로' 피터 드러커처럼 경험하라
[자기실현]①'진짜 프로' 피터 드러커처럼 경험하라
  • 아이엠리치
  • 승인 2006.07.0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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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실현]①'진짜 프로' 피터 드러커처럼 경험하라


세상을 떠나기 3개월전 셰익스피어 전권을 꺼내 다시 읽겠다고 했으며, 심지어 1주일 전에는 새로 나올 책을 구상했다는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2005년 11월. 96세를 1주일 남기고 세상을 떠난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경영학의 대가였다. “나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한다”는 진실한 경영교육자였다.

 

드러커의 역작 ‘21세기 비전’ 전3권 중 첫 번째에 해당하는 <프로페셔널의 조건>(청림출판. 2001)은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빼놓지 않고 읽어야 할 필독서다.


개인의 자기실현, 자기관리에 초점이 맞춰진 <프로페셔널의 조건>은 현실로 다가온 도전, 내일의 도전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 CEO, 독서광으로 알려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극찬을 아끼지 않으며 독서목록에 빠지지 않고 포함시키는 피터 드러커의 위대한 생각을 간파 해 자신의 실력으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 연재 기사의 핵심이다. 그가 겪었던 실제 경험을 숙지하며 자기계발, 자기관리의 실력자로 거듭나보자.


①피터 드러커처럼 경험하라


첫번째 경험 “목표와 비전을 가져라”


피터 드러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을 떠나 독일의 함부르크에 있는 면제품 수출회사에 견습생으로 입사했다. 당시 나이는 열여덟 살. 오전 일곱 시 반에 출근해 오후 네 시까지 일하던 그는 주중 5일은 시립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저녁시간을 보냈다.

 

15개월 동안 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어로 된 책을 읽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오페라를 관람했다. 개막 한 시간 전까지 극장 앞에 서있으면 막이 오르기 10분 전까지도 팔리지 않는 제일 값싼 좌석은 대학생에게 무료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돈이 별로 없었지만 오페라도 관람할 수 있었다. 오페라를 관람하던 중 그는 19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1813~1901)가 1893년 생애 마지막으로 작곡한 '폴스타프'를 관람하게 된다.


관람 한 후 자료를 읽다 그는 깜짝 놀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활기 넘치는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이 여든 살의 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특히 “음악가로서 나는 일생 동안 완벽을 추구해 왔다. 완벽하게 작곡하려고 애썼지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될 때 마다 늘 아쉬움이 남았다. 때문에 나에게는 분명 한 번 더 도전해 볼 의무가 있다고 생각 한다”는 베르디의 말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피터 드러커는 이후 이 말을 잊지 않고 가슴 속에 새겼다. 열여덟 살의 소년에게 여든 살 노인의 도전은 “나이를 먹게 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정진하리라”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또 살아가는 동안 완벽은 자신을 피해 갈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완벽을 추구하리라는 다짐도 하게 됐다.


두번째 경험 “신들이 보고 있다”


견습생으로 일을 배울 때 ‘완벽’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읽게 됐는데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조각가 페이디아스에 관한 이야기였다. 페이디아스의 작품들은 오늘날까지도 서구 미술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보는 이마다 그의 작품을 칭송했지만 정작 아테네의 재무관은 페이디아스의 작품료 지불을 거절했다.


“조각들은 신전의 지붕위에 세워져 있고, 신전은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조각의 전면밖에 볼 수가 없다. 그런데도 당신은 우리에게 조각 전체 값을, 아무도 볼 수 없는 조각의 뒷면 작업에 들어간 비용까지 청구했다”라고 말했다. 페이디아스는 이에 “아무도 볼 수 없다고? 당신은 틀렸어. 하늘의 신들이 볼 수 있지”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커는 폴스타프를 관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이야기를 읽고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 늘 신들이 눈치 채지 않기를 바라는 식으로 일을 해온 자신에게 오직 ‘신들’만이 그것을 보게 될지라도 완벽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페이디아스의 일화는 뼈저린 경험을 하게 했다.


세번째 경험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를 공부하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증권회사의 견습생일을 마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신문사 금융 및 외교 담당 기자로 첫발을 내딛게 된 피터 드러커. 당시 법학에는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베르디와 페이디아스의 교훈만은 잊지 않고 있었다. 신문기자는 여러 가지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그 주제들에 대해 유능한 기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은 알아두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전 여섯시부터 일하기 시작해서 오후 두시 반, 최종 편집판이 인쇄에 들어가면 퇴근을 했던 그는 남는 오후 시간과 밤 시간을 이용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국제법, 사회제도와 법률의 역사, 일반 역사, 재무에 대해 공부했다. 그는 이후에도 60년간 3,4년 마다 다른 주제를 선택해 공부했다. 통계학, 중세역사, 일본미술, 경제 학 등 다양한 공부를 3년 내지 4년마다 주제를 바꾸어 공부하니 상당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이런 공부법은 새로운 주제와 시각, 새로운 방법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게 만들어준 특별한 경험이었다.


네번째 경험 “자신의 일을 정기적으로 검토하라”


피터 드러커가 기자로 일할 때 당시 50대였던 편집국장은 매주 기자들이 쓴 기사를 가지고 각자와 함께 토론을 벌였다. 일 년에 두 번, 정월 초하루 바로 다음날과 6월에 시작되는 휴가철 바로 직전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하루 종일은 지난 6개월간 기자들이 했던 일에 대해 토론을 하며 보냈다.

 

편집장은 언제나 기자들이 잘하려고 노력한 이야기를 하고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분야를 날카롭게 검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자 모두가 잘못했거나 실패한 일에 대해 비판했다. 모임의 마지막 두 시간 동안에는 앞으로 6개월 간 해야 할 일을 계획했다. 일주일 뒤 각자는 다음 6개월간의 새로운 업무 계획과 학습 계획을 편집국장에게 제출해야만 했다.


그로부터 10년 뒤 대학교수로 재직하며 기업에 경영 컨설팅을 제공하는 일과 주요한 책들을 출간하면서 그는 편집국장에게 배운 방법을 떠올렸다. 그리고 여름만 되면 2주일간 시간을 따로 할애해 지난 1년간 자신이 한 일을 검토하고 했어야만 했는데도 하지 않은 일, 더 잘했어야 하는 일등을 자세히 검토했다. 그 계획을 통해 베르디의 교훈 ‘완벽을 기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살게 되었다.


다섯번째 경험 “새로운 일이 요구하는 것을 배워라”


1933년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런던에서 규모가 상당히 큰 보험회사 증권분석사로 일하게 된 피터 드러커. 1년 후에는 규모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던 개인 은행의 경제 분석가 겸 3명의 시니어 파트너의 수석비서로 근무하게 됐다. 3개월가량 지났을 때 창업자가 그를 불러 이런 말을 했다.


“자네가 회사에 입사 할 때 난 자네를 눈여겨보지 않았네. 그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네, 그런데 자네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어리석군. 나는 자네가 보험 회사의 증권분석사로 일을 썩 잘했다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러나 만약 자네가 증권 분석 업무를 계속 하길 바랐다면 우리는 자네를 이리로 데려오지 않았을 걸세. 지금 자네는 시니어 파트너들의 수석 비서인데도 여전히 증권분석사 시절에 하던 것처럼 일하고 있더군. 지금 자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피터 드러커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내심 창업자의 말에 동의 할 수 밖에 없었고 행동 방식과 하는 일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후 새로운 일을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새로운 일을 맡은 지금 내가 효과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여섯번째 경험 “피드백 활동을 하라”


1937년 영국에서 미국으로 다시 건너간 피터 드러커. 그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1945년 경 그는 근대 유럽의 초기 역사, 특히 15~16세기의 역사를 3년에 걸쳐 연구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연구를 통해 근대 유럽에 지배적인 세력을 지닌 두 개의 조직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하나는 가톨릭이 지배하는 남부 유럽의 예수회였고 다른 하나는 프로테스탄트가 지배하는 북부 유럽의 칼뱅파 교회였다. 1536년에 독자적으로 창설된 두 교단은 똑 같은 방법으로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예수회나 칼뱅파 목사는 중요한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이 예상하는 결과를 기록해 두었다.


그리고 9개월 후에는 실제 결과와 자신이 예상했던 결과를 비교해보는 피드백 활동을 했다. 자신이 잘한 것이 무엇인지, 장점은 무엇인지를 신속하게 알려주는 과정이었다. 피터 드러커는 이 방법을 50년 동안 지속했다. 장점은 한 개인이 개선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 지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는 지속적 학습의 관건이다.


일곱번째 경험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 바라는가”


피터 드러커는 1950년 1월 아버지와 함께 부친의 오랜 친구였던 유명한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1883~1950)을 방문했다. 두 노인은 지난날을 함께 회상하며 멋진 시간을 보냈다. 부친은 이야기 도중 “조지프, 자네는 아직도 자네가 죽은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지에 대해 말하고 다니나?”라고 물었다. 슘페터는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30세의 나이로 슘페터가 처음 책 두권을 출간했던 당시 “유럽 미녀들의 최고 연인, 유럽의 최고 승마인, 그 다음으로는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유명세를 탄 이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슘페터는 “그렇네. 그 질문은 여전히 나에게 중요하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당시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하고 있네. 나는 대여섯 명의 우수한 학생을 일류 경제학자로 키운 교사로서 기억되길 바란다네. 아돌프 이제 나도 책이나 이론으로 기억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어. 진정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수 없는 책이나 이론이라면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걸 알았단 말 일세” 슘페터는 그들의 방문을 받은 닷새 후에 세상을 떠났다.


피터 드러커가 당시의 아버지와 슘페터의 대화에서 배운 것은 세 가지였다.


1.우리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해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2.우리는 늙어가면서 그 대답을 바꾸어야만 한다. 그것은 차츰 성숙해가면서 그리고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바뀌어야만 한다.

3.사는 동안 다른 사람의 삶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 ②편에서는 ‘피터 드러커처럼 시간을 써라’가 소개됩니다.


[아이엠리치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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