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누가 유훈을 어기고 있나
한진그룹, 누가 유훈을 어기고 있나
  • 김예솔 기자
  • 승인 2020.01.17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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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아의 한진그룹 ‘판 뒤엎기’ 합종연횡을 보는 재계의 불안한 시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작년 12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 방식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연합뉴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작년 12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의 경영 방식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사진=연합뉴스)

 

[화이트페이퍼=김예솔 기자] ‘누가 유훈을 어기고 있나’

유훈(遺訓) 준수는 대권 승계의 명분이자 필요조건이다. 지난해 갑자기 세상을 뜬 고(故)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남매 간의 ‘공동 경영’을 유훈으로 남겼다. 부친 작고 당시 ‘땅콩 회항’과 ‘물컵 갑질’이라는 사회적 사건으로 한진 그룹 경영에서 잠시 거리를 둘 수밖에 없었던 조현아 전 부사장과 조현민 한진칼 전무 등 누나와 동생을 제치고 조원태 회장이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설 때만 해도 ‘공동 경영’ 유훈의 시작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조 전 부사장이 “조원태 대표이사가 부친인 고(故) 조양호 회장의 공동경영 유훈을 어겼다”면서 공식적으로 경영 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사태는 시작됐다. 게다가 최근엔 조현아 전 부사장이 KCGI 측과 반도건설 측과 만났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태는 격랑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그룹 지배의 정점인 한진칼의 지분 구조는 ▶조원태 6.52 ▶조현아 6.49 ▶조현민 6.47 ▶이명희 5.31 ▶재단 등 특수관계인 4.15 ▶KCGI 17.29 ▶델타항공 10.0 ▶반도건설 8.20 ▶국민연금 4.11 등이다. 조원태 회장 측이 확실한 지분은 조원태+재단 등 특수관계인+델타항공 등 20.67%에 불과하다. 동생인 조현민 전무와 어머니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의 지분까지 포함해야 32.45% 수준이 된다. 반면 조현아 전 부사장이 KCGI와 반도건설과 연합을 하게 되면 지분 합계가 31.98%까지 된다. 때문에 조원태 회장이 깊은 고심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주식회사의 표 대결을 지분율의 싸움으로 한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공동 경영’의 유훈을 누가 어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오너 일가의 내부 문제이기 때문에 차치하더라도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재무·사업구조 혁신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기타 주주의 신임을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명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명분은 결국 도덕적 명분에 더해 비전, 리더십, 숫자라는 실질적인 경영능력에 대한 증명으로 귀결된다. 이 명분이 최종적인 ‘승리’의 충분 조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조현아 전 부사장이 시도하고 있는 KCGI, 반도건설과의 ‘불안한 거래’는 명분이 떨어져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오너 일가의 사회적 물의를 지적하면서 견제자로서의 존재 가치를 드러냈던 KCGI는 사회적 물의를 최초 일으켰던 장본인과 손을 잡게 되면 수익 극대화만 되면 무엇이든 하는 ‘사모 펀드’의 민낯을 보여주게 된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아버지를 공격하고, 어렵게 만든 이들과 손을 잡았다는 ‘도덕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공동경영 유훈’을 명분 삼아 들고 일어났기 때문에, KCGI와의 연대는 설득력이 없다는 말이다. 가족들과 등을 돌린 채, 외부세력과 합종연횡하는 것은 결국 유훈을 어기는 꼴이어서다.

조원태 회장 또한 기타 주주의 신임을 확실히 얻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룹 총수로 자리 잡은 지 얼마 되지는 않았다는 변명거리가 있지만 한진그룹의 캐시카우인 대한항공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되는 등 표면적으로 보여지는 개선 모습이 크게 없는 상황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판 뒤엎기 시도가 그룹 경영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수 있다”면서 “가족 간 합의를 통해 현재의 불안한 지배구조를 먼저 안정화시킨 뒤에 서서히 분리를 시도하는 것이 수순”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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