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바람’으로 돌아온 시인 신현림
천 개의 바람’으로 돌아온 시인 신현림
  • 북데일리
  • 승인 2005.07.1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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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 앞에서 울지 마세요/ 나는 그곳에 없습니다. 나는 잠들지 않습니다./ 나는 천의 바람, 천의 숨결로 흩날립니다’(‘천개의 바람이 되어’ 본문 가운데)

7.7 런던 테러로 인해 세계는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한 보수 정당의 의원은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이 다음 테러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예단했다. 섣불리 내뱉지 말아야 할 그런 말은 결국 `Believe or Not`(믿거나 말거나)이겠지만, 그런 풍월을 듣고도 납작 엎드릴 수 밖에 없는 게 우리네 삶이고 현실이 되었다.

허망한 죽음 앞에 모두 주눅들어 있는 지금, 산 자가 죽은 자를 위로하기 보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위로하는 시 한 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작자 미상의 시 `천 개의 바람이 되어`는 9.11테러 1주기를 맞아 한 소녀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대신해 낭독해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적신 바 있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가 알려진 계기는 24살의 한 청년이 남긴 유서와 같은 편지 때문이었다. IRA(아일랜드 공화국군) 폭탄 테러로 목숨을 잃은 청년 스테판 커밍스가 그의 부모에게 남긴 한 통의 편지 속에 들어있던 12줄의 짧은 시가 바로, ‘천 개의 바람이 되어’였다고 한다. 청년의 장례식 날, 그의 아버지가 이 시를 낭독하는 장면이 BBC 방송을 통해 전해지면서 영미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가 되었다.

한 줄기 바람처럼 고요한 시 ‘천 개의 바람이 되어 A Thousand Winds’(클로세움. 2005)가 신현림 시인의 사진과 에세이로 되살아났다. 그는 책을 통해 현대인의 냉가슴에 잃어버린 인간의 서정을 불어넣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의 가슴을 보듬아 주고 있다.

신현림 시인은 “흐르는 바람이 시고, 벚꽃이 흩날릴 때 시는 태어난다”고 말했다. 세상은 끊임없이 조각나 있지만 시인은 침묵과 고요 속에서 가장 고결한 시적 언어를 창조한다. 조각난 세상을 완성하는 것이다.

“나는 내 안의 무수한 사람이 산다고 생각해요. 그 안의 사람들이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얼마나 많겠어요. 일상의 사소한 부분들과 인생의 흐름을 예민하게 받아들여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시인이잖아요. 자신이 감동을 받고 그 감동을 온전히 전달해주는 사람이겠죠.”

인간의 가진 교만함과 오만함을 스스로 정제하는 시간이 곧 그가 시를 쓰는 순간이다. 반성 없이 타성에 젖어 사는 현대인의 망각과 불행을, 시인은 시를 쓰면서 끊임없이 정화시킨다. 시를 쓰면서 ‘보다 인간에 가까워진다’는 그는 “살아있다는 것은 부족하고 채울 게 많다는 뜻과 같다”며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

사람이 늘 그리운 그에게 예술은 그의 선천성 그리움을 달래는 방편일 수도 있다. “철이 없는 사람이 하는 게 예술이에요. 나는 이 마음이 계속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예술 작업에 대한 태도는 언제나 순수하고 천진한 구석이 있어야만 계속된다는 생각이 들어요”라며 그는 앞으로도 자신만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하기를 원한다.

‘완벽주의자가 아니라 최선주의자’이고 싶다는 신현림 시인. 이제 그는 작품에 대한 미련과 집착도 조금은 덜어내고 작업 자체를 즐기고 싶어 한다. 신현림은 더이상 시를 쓰는 시인이 아니다. 사진을 찍기만 하는 사진가도 아니다. 그는 작품과 마음이 한가지로 통하는, 예술에 혼을 불어넣는 장인의 정신으로, 시를 쓰고 사진을 찍으려 정진한다.

가장 하찮은 것에서 가장 매혹적인 것을 발견하는 그는, 여전히 천개의 눈, 천개의 바람과 함께 살고 있다. (사진= 클로세움, 바다출판사, 문학동네, 바다출판사, 민음사, 마음산책 제공) [북데일리 백민호 기자] mino10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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