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김다은 편지는 개인사 서간체로 소설
작가 김다은 편지는 개인사 서간체로 소설
  • 북데일리
  • 승인 2006.03.3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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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서간체 장편 <이상한 연애편지> 작가 김다은

“자작님, 당신은 왜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아세요? 그것은 오로지 내가 하는 일에 간섭할 권리를 그 누구에게도 주기 싫어서입니다. 그렇다고 결혼하면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도 아니에요. 나는 언제나 그렇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다만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일 거예요. 결국 나는 필요 때문이 아니라 나의 즐거움을 위해 남을 속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피에르 쇼데르로스 드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문학사상사. 2003)에 나오는 메르테유 후작부인이 발몽 자작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희대의 바람둥이 발몽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여자 메르테유의 편지가 당차고 도발적인 심리를 투명하게 묘사한다.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는 영화 ‘위험한 관계’(1988,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 ‘발몽’(1989, 감독 밀로스포먼),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1999, 감독 로저 컴블) 그리고 우리영화 `스캔들`(2003, 감독 이재용) 로 만들어졌다.

문란하고 퇴폐적인 프랑스 상류사회의 모습을 날카롭게 묘사한 문제작 <위험한 관계>는 여러 편의 영화로 제작 되며 꾸준히 사랑 받았다. 파리 사교계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 간 편지를 엮어 만든 책은 한때 ‘악덕한 책’으로 간주됐을 만큼 은밀한 인간 내부의 욕망과 이중적 허위를 적나라하게 그는 작품이다.

<위험한 관계> 외에 대표적인 서간체 문학으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민음사. 2000)이 있다. 1774년 출간되자마자, 파란을 일으켰던 이 작품은 사랑하는 여인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열망과 슬픔을 절절히 담아 지금까지도 인기리에 읽히고 있다.

세계 문학사에 길이 남은 여러 편의 서간체 소설에 비해 우리에겐 서간체 소설이 없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편지’로 묶인 소설이 만들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첫 서간체 장편 소설 <이상한 연애편지>(생각의나무. 2006)를 출간한 소설가 김다은은 역사적 배경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역사나 권력이 거짓말을 해도 시간이 지나 주고받은 편지를 맞추면 진실이 드러나곤 했던 유럽과 달리 우리는 식민지를 겪으면서 진실을 기록 하지 못하도록 강요받아 왔습니다. 개인이 기록을 남기면 심각한 손상을 입기도 했던 정보정치도 거쳤죠. 그러면서 점점 기록을 남기지 않게 된 것입니다”

작가는 ‘신기하고 낯선’ 소설 <이상한 연애편지>를 쓰면서 문학 텍스트가 될 수 있는 편지가 제 가치를 받지 못했던 문학적 역사를 연구, 조사했다.

이미 2003년 월간 ‘NEXT’에 작가들의 연애편지를 싣는 일을 진행하면서 많은 이들이 사생활이 담긴 편지노출을 꺼린다는 사실을 접했다.

어려움을 겪던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사람은 소설가 함정임이었다. 독일 유학 중인 남자친구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건네 준 함정임 이후 작가들은 ‘비밀스런’ 연서를 하나 둘씩 열어 보여 주었다.

불태워지다 만 조각, 땅과 벽에 묻어 두었던 빛바랜 종이, 눈물로 얼룩진 글씨가 번져 있는 편지들은 개개인의 ‘역사’였다.

“국가에 역사가 중요하듯 개인에게도 역사는 중요합니다. 편지는 한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 물증이죠. 결혼하기 전 많은 이들이 연애편지를 불태우기도 하는데 저는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편지를 불태우는 것은 자신의 역사를 불태우는 일이니까요”

편지에 대한 작가의 남다른 애착은 2003년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 학술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문학작품을 낭독하는 시간에 한 프랑스 시인은 자신의 연애편지를 낭독했다.

`이런 자리에서 연애편지를 읽다니`라며 의아해 했던 자신과 달리 다른 학자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편지를 다른 문학텍스트처럼 받아들였다. 그것은 충격이었다. 프랑스 시인이 읽던 편지는 이미 문예지에 발표 된 작품이었다.

문화적 충격을 겪은 김다은은 한국으로 돌아 와 어떤 과정을 통해 편지를 문화텍스트로 받아들이게 됐는지 외국의 역사적 배경을 조사했다. 우리나라의 선비, 학자들의 편지도 함께 조사 한 결과 편지를 문학으로 간주하지 않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뿐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서간체 소설 <이상한 연애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이화여대 불어교육학과, 불어불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한 후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 온 김다은은 첫 강단에 서기 전 3개월간의 공백이 주어지자 소설을 썼다.

“짐도 프랑스에서 도착하기 전이었고 당시 저에게 주어진 것이라곤 종이와 펜뿐이었어요”

프랑스에서 13시간씩 공부하던 습관 때문에 편히 쉬는 것이 익숙지 않았던 그녀는 첫 소설 <당신을 닮은 나라 1, 2>이 국민일보 문학상에 당선돼 소설가의 길에 발을 내딛었다.

이후 장편소설 및 창작집 <러브버그>(해냄. 1999) <사인사색>(고도. 1999) <위험한 상상>(이룸. 2000) <푸른 노트 속의 여자>와 산문집 <껍질 벗긴 소>(담벼락. 2002) 등을 발표하며 10년째 강단에 서고 있는 김다은은 현재 추계예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초의 서간체 장편 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개척’하는 심정으로 3년이라는 긴 시간을 공들여 <이상한 연애편지>를 완성했다.

나리와 원혁이라는 인물이 쓴 편지를 통해 미스테리한 사건을 전개 해 나가는 소설은 전철, 비행기 같은 운송수단의 기능을 편지에 부여한다. 두 사람이 한국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오직 편지를 통해 그려진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격정을 편지로 뒤흔들어 보고 싶었다”는 김다은의 말처럼 편지만이 미로로 둘러싸인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다.

매년 편지 축제가 열리는 우르공 성에 도착한 나리. 편지 왕을 뽑는 대회를 취재하는 것이 그녀의 업무다. 사건은 나리에게 구애했던 바람둥이 다니엘이 낭송한 한 통의 연애편지에서 시작된다. 연애편지를 둘러싼 독살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문제의 편지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작가는 미궁으로 빠져드는 상황 속에 성을 고립시킨다. 전화도 인터넷도 전화도 없는 성에서 사람들은 주고받은 수십 통의 편지를 통해 성과 연애편지를 둘러싼 진실을 하나 둘씩 벗겨 나가기 시작한다.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촘촘히 놓여져 있는 소설은 단숨에 읽힌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편지가 갖고 있는 은밀한 요소들을 부각 시키면서도 미스테리한 사건의 전모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굵직한 ‘야심’이 전면에 부각된다.

“이제 독자들과의 대화만 남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김다은은 “소설은 나를 젊어지게 합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최첨단 통신수단. 직장에 얽매이지 않은 프리랜서라는 직업형태, 이국의 땅 등 세련된 감각은 작가를 쏙 빼닮았다. 김다은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문학적 실험을 계속 할 계획이다.

“글 쓸 때 가장 즐겁다”는 작가.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글을 쓸 때는 ‘열정’ 적이고 ‘우주’ 적으로 변한다는 작가에게 글쓰기란 진정 ‘축복된’ 순간이다.

[북데일리 김민영 기자] bookworm@p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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