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무릎꿇은 위대한 고백 "미안하다..."
죽음도 무릎꿇은 위대한 고백 "미안하다..."
  • 북데일리
  • 승인 2006.03.09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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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방송된 KBS2TV 주말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연출 김성근)에서 희귀암을 앓고 있는 연경(유호정)이 궁지에 몰린 형편으로 약조차 받지 못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증량이 되서 약값이 좀 비쌉니다. 수술 후에도 예방차원에서 계속 복용해야 합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월급이 차압당한 최악의 순간에 연경이 의사로부터 들은 ‘절망적’인 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지만 채무자들에게 쫓기고 있는 상황이기에 선뜻 결심이 서지 않았다.

아이들이 ‘돼지불고기’와 ‘귤, 사과’를 먹고 싶다고 조르자 연경은 장을 보러 나간다.

"반근만 주세요..."

고기를 사며 ‘슬그머니’ 꺼낸 말이 보는 이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었다.

없는 형편이지만, 사랑하는 두 아이만 생각하면 못해준 게 먼저 떠올라 미안한 연경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파라북스. 2006)의 여섯 번째 주인공 손미양(39)씨는 연경처럼 딸아이가 눈에 밟혀 마음 놓고 ‘앓지도’ 못하는 췌장암환자다.

불문학을 전공하고 잡지기자로 일했던 손 씨는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큰 상처를 받았지만, 슬픔을 딛고 일어났다. 사랑하는 딸 ‘아린’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뜻’으로 지극한 반려자를 만나 새 삶을 시작하게 된 손 씨. 가난하지만 소박한 행복이 봄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던 순간 청천벽력 같은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췌장이 인체의 어느 곳에 있는 지도 모르고 살았던’ 그녀에게 암선고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생과사의 갈림길에 선 8명의 주인공을 만나 인터뷰한 저자 손동인씨는 손미양씨가 선고받은 남은 ‘3개월’을 “단순한 현악기 하나 배울 시간도 못되는 시간, 포도주 하나 그윽하게 숙성시킬 수 없는 짧은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손 씨의 남편은 아내의 병을 알고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셔츠가 다 젖을 정도로 통곡했다고 한다. 먼 길을 돌아 비로소 오래 함께 살고 싶은 사람과 만났는데 그조차 허락받지 못했으니 슬픔이 오죽했을까.

손 씨는 유럽에 가고 싶어 했다. 불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파리의 세느강, 샹제리제 거리, 몽마르트 언덕에 가겠다는 소중한 꿈을 키워 왔다. 이제는 흔한 관광지가 된 그곳들을 가보지도 못하고 왜 그리 아껴 두기만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가슴만 먹먹해져온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떠올릴 때 가슴이 아픈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딸 아린이 때문이다. 이제 11살 된 딸의 앞날을 생각하면 죽어가는 자신이 한없이 밉고, 또 밉다.

“아린아, 네 얼굴을 만질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널 오랫동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부디 행복했던 순간만 기억해다오. 아린아 학교를 마치고 집에 와서 엄마가 없어도 너무 놀라지는 마. 이따금 그랬던 것처럼 잠깐의 외출로 생각해주렴. ‘엄마 어디 갔니?’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냉장고에서 간식도 꺼내 먹고 숙제도 하고 있으렴. 그래도 해지고 밤이 깊도록 엄마가 돌아오지 않으면...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봐. 엄마는 그곳에서 영원히 널 지켜볼 거야...”

딸에게 남긴 애절한 편지가 눈시울을 적신다.

죽음의 문턱에 올라선 8명의 이야기 <미안하다 미안하다 미안하다>에 소설가 이외수씨는 “이 책을 통해 신이 우리를 빈손으로 저세상에 데리고 가시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우리가 사랑 하나만 간직하고 있으면 빈손으로도 충분히 저세상을 아름다운 영혼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 이라는 감동적인 후기를 덧붙였다.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사랑하는 가족생각에 수술결심을 하지 못하는 드라마 속 연경이나, 외로이 남겨질 딸 때문에 아프다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손미양 씨 모두 이외수씨가 말한 한없이 ‘아름다운 영혼’이다.

[북데일리 홍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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