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보다 저축 나선 기업... 기업예금 400조 넘어 역대 최고
투자보다 저축 나선 기업... 기업예금 400조 넘어 역대 최고
  • 박재찬 기자
  • 승인 2019.03.12 08: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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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예금은행의 기업예금 잔액은 425조8778억원으로 1년 전보다 6.8% 증가했다. 기업예금이 400조원을 넘은 것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사진=연합뉴스)

[화이트페이퍼=박재찬 기자] 투자의 주체로 알려진 기업의 예금 증가율이 저축 주체인 가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말 예금은행의 기업예금 잔액은 425조8778억원으로 1년 전보다 6.8% 증가했다. 기업예금이 400조원을 넘은 것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반면 가계 은행예금 잔액은 3.1% 증가한 618조4422억원이었다. 기업예금 증가율이 가계 증가율보다 3.7%포인트 높은 셈이다.

이론적으로 전체 경제에서 가계는 저축의 주체다. 금융기관이 가계 저축으로 자금을 조달하면 투자의 주체인 기업이 이를 빌려 생산시설을 확충하거나 건물 건설 등에 쓰는 구조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같은 이론이 성립되지 않는 모양새다.

지난 2015년부터 기업예금 증가율은 가계를 앞섰다. 기업예금 증가율은 2014년 3.4%에서 2015년 8.3%로 뛰었다. 같은 기간 가계 예금 증가율은 같은 기간 5.7%에서 5.4%로 소폭 떨어지며 가계·기업 예금 증가율 간 역전 현상이 빚어졌다.

2016년에는 기업예금 증가율이 10.2%로 확대한 반면 가계 증가율은 3.8%로 하락하며 역전 폭이 확대했다. 2017년 들어 기업(4.0%)·가계(3.3%) 예금 증가율 격차가 0.7%포인트로 좁혀지는 듯했으나 지난해 재차 벌어졌다.

2000년대로 확대해보면 기업예금 증가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전체 은행예금 가운데 기업 비중은 2000년 26.0%에서 지난해에는 30.5%로 올라섰다. 반면 가계 비중은 59.8%에서 44.3%로 쪼그라들었다. 기업예금 증가율이 높아지는 것은 기업의 소득이 늘고 있지만 투자나 임금, 배당으로 환류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민총처분가능소득 가운데 기업 비중은 2000년 14.2%에서 가장 최근 자료인 2017년 20.2%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가계 몫은 62.9%에서 56.0%로 떨어졌다.

한은 관계자는 “국민소득 중에서 기업 비중이 확대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가계의 경우 대출까지 받아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자산을 묶고 있고 고령화 때문에 저축 통계로 잡히지 않는 보험사 퇴직 연금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기업예금 증가는 국내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다.

미국의 비영리 민간연구단체인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2017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1960년부터 2013년까지 전 세계 66개국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1980년께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0% 미만이던 글로벌 기업저축이 2010년대에는 약 15%까지 상승했다고 밝혔다. 30년간 기업저축의 GDP 대비 비율은 약 5%포인트 상승했지만 가계저축의 GDP 비율은 오히려 6%포인트가량 떨어졌다.

보고서는 기업이익이 늘어난 만큼 배당금 지급이나 투자가 증가하지 않았고 기업저축의 일부가 자사주매입이나 사내유보 등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기업저축이 늘어나는 것은 기업이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해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며 “신성장 산업 육성 등 새로운 산업 정책으로 기업의 투자를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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