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청춘의 서글픈 자화상
우리 시대 청춘의 서글픈 자화상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3.02.04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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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크>로 돌아 온 김혜나

[북데일리]  <제리>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김혜나가 두번 째 장편소설을 그렇다. 사생아로 태어나 비정규직이며 게이인  주인공의 삶을 다룬 <정크>(민음사. 2012)가 그것이다. ‘인간쓰레기’라는 뜻이 담긴 강렬한 제목이다.

 그렇다. 소설의 주인공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삶을 산다. 성재는 스물일곱의 청년으로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지만 화장품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이다. 가정이 있는 남자를 아버지를 둔 그는 말 그대로 첩의 자식인 것이다. 때문에 존재 자체를 인정받을 수 없는 존재다.

 아버지는 일주일에 두어 번씩 집으로 찾아와 돈 몇 만원을 놓고 가는 게 전부였다.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며 매일 술에 취한 엄마도 성재가 무슨 일을 하고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관심이 없다. 성재에게는 자신을 인정해주는 동성애자 친구와 애인 민수 형, 화장이 전부였다. 화장은 자신을 숨기거나 변화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취업은 닿을 수 없는 것이다.

 ‘미래엔 무언가 달라질 거라는 기대와 믿음이란 정말이지 근거 없고 허황된 것이 아니었을까. 삶은 결코 끝나거나 달라지지 않고 끝없이 이어지기만 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나는 한갓 길거리 상점의 아르바이트생일 뿐이었다.’ 75쪽

 한때 성재는 애인 민수 형과 결혼을 꿈꿨다. 하지만 그는 유학 후 한 여자의 남편이자 한 아이의 아빠로 돌아온다. 능력 있는 치과 의사에 단란한 가정의 가장, 그것이 민수를 보는 세상의 시선이었다. 성재는 그런 민수를 놓을 수 없어 아프고 괴롭다.

 김혜나는 동성애자들이 모이는 찜질방이나 영화관에서 사랑을 나누는 모습, 클럽에서 약을 만들고 그것에 취해 울부짖는 모습, 완전한 여자로 살기를 꿈꾸며 화려하게 화장을 하는 모습을 통해 그들의 일상을 과감하면서도 자세하게 표현한다. 어디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무리에 들지 못하며 술과 약의 힘을 빌려 스스로를 위로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 나를 잊어야만, 겨우 존재할 수 있었다. 쓰레기 같은 인생길 위에서 쓰레기처럼 살아가고 있는 거나, 쓰레기 같은 길바닥을 애써 외면한 채 화려하고 번듯하게 살아가는 거나 다 마찬가지였다. 잘났거나, 못났거나, 이러나저러나, 어차피 우리 모두가 쓰레기인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오로지 이 순간만, 내가 모두 다 사라져 버린 이 순간만이 투명하도록 진실했다.’ 112쪽

 ‘내가 정말로 두려워하고 또 무서워했던 것, 그것은 바로 삶이었다. 죽도록 도망치고 싶지만 죽어도 도망쳐지지 않는 이 현실, 내가 서 있는 이곳, 나, 라는 인간, 나, 라는 인간의 더럽고 구질구질한 한 생애가 두렵고 무서워 이가 덜덜 떨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고, 아무리 멀리 도망쳐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위에서 나는 끊임없이 살기를 반복하고 있었지만 단 하루도 제대로 살아 있지 못했다.’ 175쪽

 성재가 바란 건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자신을 떳떳하게 드러내고 인정받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건 현재를 사는 모든 청춘들의 간절한 소망이다. 어쩌면 김혜나가 동성애자를 주인공을 삼은 건 주목받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을 빌려 주저하고 두려워하는 청춘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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