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 다리잡고 먹든 몸통잡고 먹든
와인, 다리잡고 먹든 몸통잡고 먹든
  • 정미경 기자
  • 승인 2012.12.18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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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이 들려주는 와인 이야기 <보통날의 와인>

[북데일리] “와인잔은 꼭 다리를 잡아야 하나? 와인의 맛은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 와인은 어떻게 골라야해?” 라는 생각에 와인 마시는 일이 불편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기자출신 셰프 박찬일이 들려주는 와인 이야기 <보통날의 와인>(백도씨. 2012)을 읽으면 답을 얻을 수 있다. 책의 첫 장부터 통쾌하다. 그는 ‘와인, 당신 멋대로 즐기라니까’, ‘오버하지 말고 편하게 마시자’, ‘어설프게 알면 우기게 마련이다’라며, 기존의 와인 상식과 결별하라고 말한다. 와인에 대한 부담감을 확 끌어 내리는 대목이다.

“와인잔은 그저 편하게 잡고 마시면 된다. (...) 프랑스 수상이나 유럽의 고급 관료가 나오는 뉴스 화면을 봐도 그들은 몸통을 잡는다. (...) 그 유명한 와인 전문가들이 몸통을 잡고 건배를 한다.” (p21) 이어 와인잔을 어떻게 잡든 와인 맛은 달라지지 않지만, 잔의 품질은 와인의 맛에 영향을 미친다고 전한다. 특히, ‘교조주의에 빠져 어색하게 마시지 말고 당신 멋대로 편하게 즐기’라고 외친다.

이와 함께, 와인을 마시고 싶은데 뒷골이 땅긴다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와인은 정말 깨끗한 술이다. 물도 안 넣고 그냥 과일 100퍼센트다. 과일의 당분이 알코올로 바뀐 것뿐이다. 순수한 것은 당연히 머리가 아플 이유가 없다.” (p37) 과일에다 소주를 부어서 만든, 머리가 아픈 우리의 ‘과일주’와는 당연히 다르다는 말씀. 산지에 따른 와인에 대한 설명을 보자.

“캘리포니아 와인은 마치 풍만한 사람 같다. 향도 맛도 넘친다. 고급 캘리포니아 와인은 코를 찌르는 오크향이 매혹적이고 농축된 과일향은 잼 냄새를 맡는 것 같다. 바디는 볼륨감이 있다 못해 터질 것 같다. 좋은 대지에서 작열하는 태양을 받고 자란 우등생 같다. 부잣집 도련님인 셈이다.

그러나 프랑스 보르도 와인은 거친 환경에서 어렵게 자라 자수성가한 사람 같은 품격을 준다. 보르도의 자연환경은 포도가 자라기에 아주 좋지만 캘리포니아에 비길 수는 없다. 척박한 땅을 뚫고 뿌리를 최대한 뻗고 양분과 미네랄을 빨아들이며 자란 흔적이 맛에 반영되어 있다. 매력은 쉽게 드러내지 않고 은근히 감추었다가 조금씩 발산할 때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르도 와인은 은근하게 사람을 적셔준다.” (p58)

레드와인과 다른 화이트와인 만의 매력도 흥미롭다. "아스팔트가 익어서 쩍쩍 달라붙는 여름에 들이키는 한 모금의 화이트와인 맛은 그야말로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될 것’이다. (...) 신맛이 적고 떫은 레드와인을 마시면 갈증이 더해지지만, 화이트와인의 상큼한 신맛이 갈증을 해소시켜주기 때문이다. (화이트와인은) 갑도 싸고 어떤 음식이든 소화해내는 기특한 놈이다. 술에 음식이 치이지 않고 음식을 음식대로 즐길 수 있게 해준다.(...) 차갑게 마시기 때문에 알코올의 강도가 약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당신의 ‘작업’에 절묘한 충복이 될 수 있다.” (p67~p68)

이 책은 저자가 이탈리아에서 3년 동안 셰프와 소믈리에로 일하면서 체험한 와인 이야기와 일상에서 배운 생생한 지식을 전한다. 코키지, 오크통, 디캔팅과 브리딩, 리저브, 빈티지, 테루아르 등 와인 관련 용어들은 물론, 소믈리에는 와인 감별사가 아니라 ‘와인 서비스맨’, ‘레스토랑의 와인 책임자’ 정도라는 설명뿐만 아니라, 라벨이 숨기고 있는 비밀, 먹다 남은 와인 보관하는 방법, 한식과 어울리는 와인 리스트 등 다양하고 실용적인 정보가 그의 맛깔스런 글 솜씨로 잘 버무려져 있다.

끝으로 저자처럼 이 글을 마무리해 보자. 당신이 만약 이 글을 읽고 지금 와인이 마시고 싶다면 마트에 가시라. 가장 싼 와인을 사서 그냥 편하게 따라 마시라. 오징어를 씹든, 과자를 곁들이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와인으로부터 해방, 그것은 당신에게 달렸다. 그리고 말하라. “흥. 난 와인을 마실 뿐이라고.” (p17)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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