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시간 편의점이 빼앗아간 것
24시간 편의점이 빼앗아간 것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12.12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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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잇]<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중에서

[북데일리] 24시간 편의점은 말 그대로 24시간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 도시인은 이에 가장 큰 혜택을 누리는 존재다. <도시에서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걷는나무.2010)의 저자가 이를 두고 펼치는 사유가 색달라 소개한다.

<포스트 잇> 24시간 편의점, 모든 워터댄서들의 간이 정거장. 도시에 힘과 땀과 용기를 다 바친 뒤 찾아가면 쪼그라든 핏줄을 다시 채워 주는 곳. 이곳의 조명은 우주선 내부처럼 밝고 온도는 쾌적하다.

나는 안다. 편의점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세상은 너무나 뜨겁거나 싸늘하리란 것을. 그러기에 이 감각의 상쾌함은 오로지 계산대에 물건을 올려놓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나는 편의점의 불타는 제단 앞에 지폐를 꽂고 향을 사른다.

24시간 편의점에서 세계는 이미 ‘한 송이 꽃’으로 피어 있다. 재로 가운데 중국산이나 인도, 베트남, 미국, 또는 호주산과 같은 짧은 원사지 표시 문구를 통해 나는 그 나라 노동자들과 만난다. 그들도 춤추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춤사위를 한 입 깨문다.

들숨 한 번에 나와 연결된 이들이 한꺼번에 들어오고, 날숨 한 번에 나는 다즐링의 홍차 재배 농사꾼이 되고, 중국의 김치 공장에서 배추를 씻는 공원이 된다. 나는 손을 모은다. 그 모든 ‘나’를 위해

나는 24시간 편의점이 있는 동네에서 문명의 모든 악덕을 발견할 수 있다고 불평했다. 우주선 내부처럼 밝은 조명은 밤의 권위를 조롱하고, 언제라도 데워 먹을 수 있는 반조리 음식들은 요리의 신성함을 빼앗아 간다고. 인간에게서 아침노을과 땅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냄새를 앗아가는 주범이 바로 24시간 오픈 문화라고. -215쪽 중에서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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