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박힌 '국보급 요강'
보석박힌 '국보급 요강'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11.27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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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태후를 모신 노궁녀의 경험담

[북데일리] 19세기 중국은 청이라는 제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청나라 말 당시 최고 권력자는 ‘서태후’였다. <서태후와 궁녀들>(글항아리.2012)은 서태후를 모셨던 한 노궁녀의 구슬을 바탕으로 기록된 논픽션이다.

서태후를 측근에서 모신 노궁녀는 궁중의 비밀스런 일들을 하나 둘씩 풀어 놓는다. 책의 저자는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해 이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그녀가 8년간 서태후를 모셨다고 소회했다. 책은 노궁녀의 경험담을 담은 만큼 궁녀의 생활, 서태후의 일상, 광서제에 관한 일화 등 궁중 이면의 흥미로운 일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책에는 궁중 서태후에 관한 일상들은 눈길을 끄는 대목들이 많았다. 책에 따르면 서태후 침실 안에는 대여섯 개의 항아리가 있었다. 그 용도는 신선한 과일을 보관하기 위함이었는데, 일종의 방향제 역할을 한 것. 특히 노궁녀가 회고하는 서태후에 대한 관방(요강)대목은 예술품을 설명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태후마마가 쓰시던 관방은 정말이지 국보급이었어요. 지금 같으면 세계 각국 전람회에 가져다놓고 전시를 해도 될 거예요. 태후 마마가 자주 쓰시던 것은 겉에 큰 도마뱀붙이가 새겨진 단향목 관방이었지요. 이 조각도 얼마나 훌륭한지 몰라요. 마치 먹잇감을 발견하고 붙잡으려는 듯한 모습이에요.(중략) 관방 뚜껑 정중앙에 누워 있는 이무기가 바로 뚜껑 손잡이였어요.”

책에 따르면 서태후는 궁을 떠나서도 이 관방을 찾을 만큼 무척 아꼈다고 한다. 요강에 이름 모를 보석도 박혀있었다고 하니 당시 궁중의 사치스런 풍경이 전해지는 듯하다. 책은 서태후와 관련된 소소한 일상을 전하기도 했지만 서태후가 시안으로 피란을 떠났던 상황도 상세하게 기록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의화단 사건(1980)이 일어난 해 서태후는 시안으로 피란을 떠나게 된다. 당시 서구의 연합국이 자금성에 침입했고, 이 급박한 상황에 서태후는 광서황제가 아꼈던 후궁 진비를 우물에 빠뜨리고 떠났다. 서양인들에게 치욕을 당하면 황실의 체통을 지킬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책에는 주도면밀했던 서태후의 모습도 담겼다. 급작스러운 상황에도 백성들이 입는 복장으로 갈아입고 황족임을 감추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것.

책은 궁중의 법도와 화려한 풍속도 담겼지만 궁궐 밖에서의 고행 길도 자세히 묘사 됐다. 허허 벌판에서 위엄을 떨치던 황족 일가가 용변을 해결해야 했던 일, 모기떼의 습격으로 곤욕을 치렀던 일 등,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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