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위에 넋 놓은 선비 뭘 봤을까
말위에 넋 놓은 선비 뭘 봤을까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11.13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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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화폭에 담긴 이야기 눈길

[북데일리] 화폭의 인물이 툭 튀어나올 것만 같다. 목이 빠져라 쳐들어 올린 모습이 선비의 체통은 잠시 잊은 듯하다. 선비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말 위에 앉아 바라보는 것이 고작 버드나무 위 꾀꼬리 한 마리다. 넋 놓은 표정에 기가 찰 노릇.

명색이 선비라면 만사에 달관해야 하지 않을까. 김홍도의 산수화<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속 풍경이다. 꾀꼬리 한 마리를 보느라 말고삐를 늘어뜨리고 입을 ‘오’자로 벌리고 있는 모양새가 선비답지 않다. <선비의 생각, 산수로 만나다>(다섯수레.2012)의 저자도 이를 두고 그림의 주제를 다음 같이 헤아렸다.

“<마상청앵도(馬上聽鶯圖)> 속 저 선비는 학문과 철학을 잠시 잊고 꾀꼬리 한 쌍의 다정한 모습에 발길을 멈춘 감상적 인물이다. 김홍도의 <마상청앵도>는 산수 표현이 간소한 듯하지만, 그 가운데 서정적 계절의 정서가 진하게 울린다. 키 작고 몸통 가는 버드나무 한 그루가 화면 오른쪽에 반쯤 가려져 기대듯 서있다.(중략) 잔잔하게 톡톡 찍어 그린 잎들에 봄이 담겼다.”-131쪽

책은 김홍도의 작품을 이처럼 묘사한다. 버드나무 가지에 푸릇하게 새로 난 신록과 화폭 속 선비와 어린 동자를 통해 봄을 말한다. 이어 김홍도 그림 위에 얹힌 시의 해석도 물결 흐르듯 부드럽다.

아름다운 여인 꽃 아래서 울리는 천 개의 혀/ 시인의 술잔 앞에 귤 한 쌍이라/ 어지럽게 오가는 금색 북이 버드나무 언덕을 누비며/ 아지랑이와 봄비를 엮어 봄 강을 짜고 있네 -<마상청앵도>에 얹힌 시

“천 개의 혀로 울리는 것은 여인의 낭랑한 목소리이거나 여인이 연주하는 생황의 울림이다. 황금빛 귤 두 알이며 날실과 씨실을 오가는 노란 북은 조그만 황색 물건으로, 노란 꾀꼬리와 한 쌍과 연관되는 시상(詩想)이다. 꾀꼬리 오가는 것이 직물 짜는 북과 비슷하니 봄 풍경의 탄생은 직물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131쪽

책은 어렵게만 여겨졌던 우리 그림 산수화를 쉽고 재밌게 ‘보는 즐거움’에 빠져들게 한다. 유려한 저자의 그림 설명은 분명 학술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지루하지 않다. 쉬운 언어로 풀어내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자연스럽다.

책은 조선 시대 산수화 62점을 골라 이야기와 감상을 그림 묘사와 함께 흥미롭게 펼쳐나간다. 책에 따르면 청소년을 비롯한 일반인을 위해 썼지만 학술적 가치 또한 적지 않다고.

산수화를 보면서 느꼈던 푸근함과 여유로움이 비단 공백(空白)의 미(美)에서만이 아니라는 것을 책을 통해 느낄 것이다. 또한 화폭에 담긴 이야기들을 한국고전문학을 전공한 저자의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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