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 그 이상의 사랑이 있었네
혁명 그 이상의 사랑이 있었네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11.06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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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냐 내전에 핀 한 여자-두 남자 사랑

[북데일리] 혁명이라 불리는 모든 것들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단순하게 뜻을 같이 하고 동참하는 경우라도 그 순간, 삶을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사랑도 그렇다. 선택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겁내지 않는 이가 있다. 기도하는 여인의 모습이 새겨진 붉은 색연필의 표지 <목수의 연필>(2012)들녘)에서도 그런 사랑을 만난다. 한 치의 균열도 찾을 수 없는 철옹성처럼 단단한 사랑이라고 하면 맞을 것이다.
 
 소설은 에스파냐 내전을 배경으로 한 여자와 두 남자의 삶에 대한 것이다. 의사인 다 바르카와 그의 연인 마리사, 그녀를 흠모하는 간수 에르발이 들려주는 그들의 사랑 이야기다. 책은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노인 다 바르카를 취재하기 위해 신문기자가 그를 방문하면서 시작한다. 혁명가이자 의사였던 그의 생은 항시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에르발이 감시하게 된 이유는 마리사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마리사를 처음 본 순간부터 에르발은 사랑에 빠졌고 그녀가 다 바르카의 연인이라는 건 그에게 거대한 상심과 분노를 가져왔다. 그럼에도 다 바르카가 감옥에 있을 때 마리사의 면회나 물건을 전달해주는 일을 거부할 수 없었다.
 
 혁명가를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다 바르카와 신념이 달랐던 마리사의 집안에서는 그를 반대했고 그녀는 자살을 시도하면서 사랑을 굽히지 않았다. 함께 한 시간보다는 지켜보는 시간이 더 많았을 사랑이다. 소설은 전쟁보다 더 치열하고 격정적인 그들의 삶을 에르발의 목소리로 잔잔하게 전달한다.

다 바르카가 감옥에서 만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과 나눈 대화를 통해 에스파냐의 역사와 정치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독자에게는 조금 지루했고 어려울 있다. 감히 감옥이라는 공간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동질감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생의 마지막 순간을 집행해야하는 에르발에게 환청이 들리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살아남은 자가 된 에르발이 자신이 죽인 화가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다 바르카와 마리사가 결혼에 이르기까지 에르발의 도움이 있었다. 다 바르카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그랬다. 사랑하는 여자의 남자를 감시하면서 그녀의 행복을 빌어줘야 하는 그 마음은 어땠을까? 세월이 흐른 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들을 기억하고 누군가에게 그들의 사랑을 전하는 일이다.
 
 ‘난 그전에도 두 사람이 같이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아무도 그 둘을 떼어놓지 못했어. 내가 마리사 마요와 다니엘 다 바르카가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안 건 그때였지. 사실 그때까지 두 사람이 부부가 될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어. 소설에선 그럴 수 있어도 그 시대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거든. 그건 마치 향로에다 화약을 뿌려대는 짓이나 다름없었으니까.’  164쪽
 
 평생을 신념대로 살아 온 남자와 그를 지지하며 사랑한 여자가 함께 늙어가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여자에 대한 욕망을 멈추지 못해 그들의 주변을 벗어나지 못한 한 남자의 삶이 가을보다 더 쓸쓸하게 다가오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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