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정육점이다
박물관은 정육점이다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09.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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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고정관념 깨는 '박물관 큐레이터'

[북데일리] “세상의 모든 박물관은 나란 존재가 오늘 여기에 있게 된 과정을 담고 있다. 잘 찾아보면 그곳에 숨어 있던 내가 보인다. 세상에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과연 누가 지루하다고 할 수 있을까? 박물관의 주인인공은 유물이 아닌 인류, 곧 나다.”

<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2012.학고재) 저자 송한나의 말이다. 이에 덧붙여 ‘박물관의 주인은 바로 자신이며 기억만 담는 역할이 아닌 정의를 이끌어 내고 그 과정을 보존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라 강조한다. 즉, 박물관이 단순히 기억을 보존하는 곳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흔히 ‘큐레이터’하면 정장차림에 미술작품을 설명하는 고상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이와 다르게 박물관 큐레이터인 저자는 역사를 연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효과적인 전시를 위해 유물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역할을 한다며 일터의 단면을 전한다.

“드라마 속 큐레이터처럼 재벌 2세가 섞여 있을지 모르는 관람객들에게 우아하게 전시물을 설명하기는커녕 나는 폭우가 쏟아지면 다리를 걷어붙이고 지하 전시실에 고인 물을 양동이로 퍼내야 했다.” -6쪽

이처럼 다른 말로 학예사라고도 부르는 박물관 큐레이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다지 고상하지 않다. 저자는 박물관이 주는 지루함의 이미지를 깨고자 노력하며 유물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삶의 박물관으로 독자를 이끈다.

“내가 꼽는 가장 대표적인 일상 속 박물관은 시장이다. 시장은 끊임없이 전시물이 교체되는 박물관과 같다.(중략) 우리는 재래시장에서 ‘채소가게’, ‘정육점’, ‘이불집’이라는 전시실에 들어가 각 전시관의 전문가인 상인들과 대화를 하며 전시물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143쪽

시장도 하나의 박물관임을 상기시키며 박물관에 대한 고착화 된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이어 황학동 도깨비 시장의 젊음 미술가들의 작품을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단수로 투덜거리는 아주머니들 불평에 ‘수도(水道)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수도박물관으로 향하기도 한다.

또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소개하면서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들과의 만남을 진중하게 다룬다. 이는 일제 강점기 때 ‘이왕가 박물관’으로 격하되었다가 지금은 세계 10대 박물관으로 우뚝 선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나아간다.

책은 삶속의 박물관부터 근현대사의 상처와 영광을 담은 박물관까지 두루 살피며 박물관을 친근하게 소개한다. 특히 박물관이 화석화된 사실의 전시장이 아니라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곳임을 일깨운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새로운 박물관을 아는 재미도 덤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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