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과 야만' 두 얼굴의 탐사여행
'낭만과 야만' 두 얼굴의 탐사여행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09.10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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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비극과 재난의 현장을 찾아

[북데일리] 서구에 의해 재단된 역사를 재해석하는 책<낭만의 길 야만의 길, 발칸 동유럽 역사기행>(2012.소울메이트)이 출간됐다. ‘다크 투어리즘’(역사적 비극과 재난 현장을 찾아 교훈을 얻는)이라는 여행서로 발칸반도 동유럽 역사기행을 다룬 책이다. 관광이나 낭만위주의 여행기를 탈피, 낭만 이면의 ‘야만’을 역사와 함께 다뤘다.

책의 저자는 복잡한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족, 종교, 인종 등 인류가 겪을 수 있는 모든 부조리와 격변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도약을 한 땅, 발칸과 동유럽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를 위해 서구에 의해 재단된 역사를 바로보고자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발칸과 동유럽을 직접 돌았다. 또한 서문을 통해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말하며 정확히 아는 것은 엄청난 힘이요 ‘돈’이 되는 일"이라 밝혔다. 첫 걸음이 닿은 곳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내전의 도시’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저자 앞에 펼쳐진 풍경은 이색적이었다.

“저녁에 산책 삼아 나와 본 사라예보의 풍경은 사뭇 놀라울 정도였다. 호텔 안쪽 골목에는 야외카페와 술집이 넘쳐나고, 한껏 차려입은 젊은 남녀들이 묘한 분위기의 조명과 시끄러운 음악에 뒤섞여 더운 여름밤을 즐기고 있었다. 마치 밤이 화려하기로 소문난 싱가포르의 ‘클리크 키’에 와 있는 느낌이다.” -32쪽

이와 반대로 책은 다음날 아침, 첫날과는 다른 사라예보 뒷골목의 모습도 조명한다. 낭만과 야만이 함께하는 모습은 이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낙서로 어지러운 건물에는 총탄자국이 즐비했고, 부서진 가옥 한편에 노인들은 초라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도시에 남아 있는 잔혹한 내전의 흔적을 따르는 시선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원마다, 모퉁이마다 묘비가 늘어서 있고, 그 앞엔 시들지 않은 꽃들이 놓여 있다. 평화의 제전인 동계올림픽의 개막식장까지 빼곡히 채워진 묘지들이 수십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내전의 아픔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33쪽

이어진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역사 기행을 거쳐 동유럽으로 향한다. 문명이 낳은 야만 ‘아우슈비츠’에서 그는 20세기 근대문명의 야만성과 조우한다. 그는 아우슈비츠를 방문해 600만 명의 사람들이 소각로에서 재가 된 현장을 돌아보며 말한다.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을 잘라 카펫과 로프를 만들고, 골분과 살갗은 연료로 쓰고, 피부는 벗겨져 비누가 되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옷을 세탁하는데 사용되고, 화장시킨 사체의 재는 비료로 뿌려져 거기에서 난 감자로 끼니를 때우던 곳이다.”-246쪽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유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 나치에 대한 분노는 타국민인 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져다. 이에 반해 저자는 양면적 견해를 고수한다. 많은 지면을 통해 아우슈비츠의 야만적 모습을 언급하지만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분쟁에 대한 견해는 날카롭다.

아우슈비츠에서 무참히 죽어간 유대인들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지만 그것이 ‘집단적 기억’을 통한 역사교육과 정치적 매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역사의 굴레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낭만의 길 야만의 길>은 한 권의 책으로 떠나는 역사기행 치고는 묵직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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