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의 벽을 허문 180km 도보여행
부자의 벽을 허문 180km 도보여행
  • 박세리 기자
  • 승인 2012.09.07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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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접어드는 아버지와 게임중독 사춘기 아들

[북데일리] ‘출발하던 날, 쏟아지는 빗길을 우비를 쓰고 말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십대의 아들과 사십대 중반의 아버지. 비슷한 체구에 똑같은 우비를 써서 뒤에서 누군가 봤다면 마치 친구 같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둘은 친구라 하기는 어색해 보였다. 같은 목적지를 가지고 우연히 같은 길로 가게 되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속으로 어색함을 감추고 걷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책<아버지와 아들>(2012.책이있는마을)은 작가가 아들과 함께 했던 5박 6일의 생생한 체험기다. 2006년 여름 5박6일간 도보여행을 담았다. 영덕에서 부산까지 180km를 걸어야하는 여정. 게임중독에 걸려 경찰서까지 들락거리는 10대 아들의 모습을 본 아버지가 내린 최후의 선택이었다.

하루 30km 가까이 걸어야 하는 고된 여정을 대화가 단절되어 버린 부자지간에 과연 가능할까. 저자 스스로 느꼈을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음은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경제적인 문제로 가족과 떨어져 살게 된 사이 아들과의 소통이 단절 된지는 이미 오래된 상황. 사실 대한민국 대부분의 부자지간의 모습이다.

여정이 시작되고 나서도 좀체 이어지지 않는 대화의 장벽을 느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임 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인상 깊다. 그렇다면 아들은 어땠을까. 아들의 속마음을 담은 일기가 중간 중간 함께 실려 궁금증을 달래준다.

“새벽에 졸린 눈을 비비며 억지로 일어났다. 정말 가기 싫다. 청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Q가 몇 년이 힘들었던 얘기를 하시는데, 솔직히 마음이 불편했다.(중략) 비가 오긴 했지만, 바다를 보며 걸으니 기분은 좋았다. 그리고 낯선 곳에서 보내는 첫날밤은 기분이 묘했다. 노물리 교회에 딸린 작은 방에 누워서 오늘 하루 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아직 아빠가 왜 이러시는지 잘 모르겠다.” -찬이의 일기 중에서

이 같은 아들의 일기는 남의 속마음을 엿보는 은밀한 재미를 더한다. 대화 이외에 할수 있는 놀이거리가 없는 사춘기 아들은 아빠의 끊임없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한다. 처음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아이는 어느새 아빠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영덕군 근처 풍력발전단지를 지나며 아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산이 이렇게 헐벗은 이유는 1997년에 큰 산불이 났기 때문이라는구나. (중략)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있었지만 다행히 산불은 마을 앞에서 멈췄단다. 대신 산은 홀랑 탔겠지? 그 덕에 풍력발전소를 세울 수 있었다고 해. 발전소를 짓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길을 새로 닦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지. 상처가 때로는 장점이 된다는 것이 이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102쪽

아버지의 이야기에 아들은 좋은 말이라고 맞장구를 쳐준다. 어느 새 부자간의 벽이 조금씩 낮아진다. 책 곳곳에 담긴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이 있어 지루하지 않다.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자녀와 나누는 대화와 애정이 아이들에게 주는 가장 큰 자산이다. 저자는 아들이 가야 할 인생의 길에 아버지가 동행이 되어주지 못하면 그 아들은 영원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가지지 못한 채 힘든 인생의 싸움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소통의 부재를 겪고 있는 아버지들이 읽어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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