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다 통신원의 세대공감 `올드앤뉴`
변산바다 통신원의 세대공감 `올드앤뉴`
  • 북데일리
  • 승인 2005.12.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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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재훈과 이휘재의 입담이 돋보이는 KBS2 연예오락프로그램 ‘상상플러스’의 ‘올드 앤 뉴’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언어`를 통해 세대간의 장벽을 없애기 위한 코너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3일 방송된 어른들이 사용하는 ‘여러 사람이 돈이나 물건 따위를 나누어 낸다’라는 뜻의 단어 `추렴`은 10대뿐만 아니라 MC에게도 생소한 단어였다. 설레발, 휘뚜루마뚜루, 외탁, 어깃장, 므흣, 넷심 등 매주 선정되는 단어를 맞추는 일이란 결코 쉽지 않다.

방송을 통해 많은 시청자들은 불과 몇십년의 차이를 두고 사용하는 언어가 단절된 현실을 실감한다. 언어 뿐 아니라 먹거리, 놀거리 등도 마찬가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놓인 간격은 세월만큼 크다.

농사꾼 시인 박형진의 에세이집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소나무. 2005)은 세대 간에 벌어진 추억의 공간을 채워주는 미덕을 자랑한다.

"지금은 계절에 관계없이 과일, 야채를 먹을 수 있지만 과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고구마를 쪄먹고, 농어 미역국을 끓이던 가을.

갓 만든 두부 한 모와 막걸리 두어 접시, 동짓달엔 엿을 고고 동동주를 만들던 겨울. 입춘이 오면 간장을 담그고, 햇보리밥에 햇감자를 으깨 넣은 된장국의 봄. 뒷 텃밭 상추와 보리새우젓, 된장만으로도 배부르던 여름."

읽고만 있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계절의 추억으로 지면은 가득 메워진다. 지금은 보기 힘든 장 담그기나 `왱병`에 얹혀 초를 만들던 때를 회상하기도 한다. 군것질 거리가 없던 시절, 아버지가 주던 엿 한가락이 얼마나 달콤했을까.

‘꼴까닥 침 넘어가는 고향이야기’라는 부제처럼 <변산바다 쭈꾸미 통신>은 미각을 자극한다.

먹거리 뿐 아니라 계절별로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담는다. 콩알만한 생아편으로 횟배를, 여우피를 발라 옻을 낫게 하던 어머니와 갈비이모, 의원이이면서 통을 잘 만들던 목수 아버지, 부스러기 한 입 떼어보지 않고 인절미를 주시던 어머니. 아이스케키 장사가 오던 날 밭 매러 나간 누님과 어머니에게 녹기 전에 아이스케키를 가져다주기 위해 달음질하던 모습.

책에서 보여 주는 모습은 20~30년 사이 빠르게 사라진 정경이다. 저자는 변해가는 우리의 모습에 아쉬움의 소리를 얹는다.

“조카 녀석의 나이가 스물다섯 살이니 소위 피자를 즐겨 먹는 세대일 수 도 있겠지만 같은 음식을 두고 전혀 다른 맛을 느껴야 하는 데는 새삼 여러 가지가 생각되었다. 하기사 음식, 아니 식성이란 게 사람마다 다 달라서 날마다 같은 상을 대하는 부부간에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 이전에 음식이 가진 가용성을 생각해보면 지금의 것보다 옛날의 음식이 훨씬 더 실속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음식을 대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말이다. (중략)

옛날 음식을 배워서 만들어 보고 남보다 맛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음식 하는 사람들에게는 남과 다른 자긍심을 가져다줄 것 같은데 내남없이 `먹고 살기 바쁜데 언제...그런걸 보면 요즈음 세대에게 그 먹고살기 바쁘다는 것은 비단 음식뿐만이 아니라 여려 방면에서 편리한 방패막이가 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본문 중)

발문을 쓴 윤구병은 박형진의 글 솜씨에 기죽는다고 했다. 독자라면 저자의 남다른 글 솜씨 못지않은 그의 추억에도 기가 죽을 만 하다.

변산바다 통신원이 전해 오는 구수한 이야기가 온몸의 촉각을 곤두세울 만큼 매력적이다.

[북데일리 이진희 객원기자] sweetishbox@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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