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과 관계'
'인간의 욕망과 관계'
  • cactus 시민기자
  • 승인 2012.05.03 07: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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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아리 소설....과연 앤은 누구일까?

[북데일리] 제목만으로도 매혹적이면서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앤>(은행나무. 2012). 그 내용은 얼마나 매혹적일까? 소설은 한 여자와 다섯 남자의 이야기다. 모두가 예상했을 <앤>은 주인공의 이름이 아니다. 여섯 명을 묶고 있는 과거의 인물일 뿐이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주홍, 해영, 유성, 기완, 진철, 재문은 앤이라 불리던 여자 아이의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들의 이야기들 들려준다. 앤은 모든 남학생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주홍은 앤의 친구였다. 우연한 사고로 죽은 앤의 모습을 주홍, 해영, 유성, 기완, 진철, 재문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들은 목격자이자 가해자였던 것이다. 앤을 죽인 건 그들 중 하나였고, 동시에 모두였다.

기완이 그들을 대신해 혼자 감옥에 갔다. 그 후 기완은 나머지 다섯 명에서 아주 불편한 존재가 된다. 어린 시절 친구였던 그들은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기완이 사고를 칠 때마다 경찰인 진철이 수습했고 탤런트로 성공한 주홍과 화자 해영과 재문이 경제적인 부분을 부담해야 했다. 공인이 된 주홍이 많은 부분을 책임지곤 했다. 열여덟 살, 그 날 이후 그저 친구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증오하고 경멸한다. 끝없이 무언가를 원했고 서로를 믿지 못했다. 여섯 명을 옭아매고 있는 건 앤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고 있었다.

화자인 해영은 주홍을 사랑한다. 아니, 집착한다고 해야 맞다. 앤의 죽음과 세상의 모든 두려움으로부터 주홍을 보호해야 할 이는 자신뿐이라 생각한다. 주홍에 관한 일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자신이 알아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과거에서 벗어나는 길만이 주홍을 지키는 일이라 여기고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으려 한다.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기완과 진철이 죽는다.

과거의 사건을 덮기 위해 시작한 비밀은 자꾸 커지고 만다. 그들은 친구를 믿지 못하고 배신해서라도 살아남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혼자만의 살 길을 찾은 듯 보이나 모두를 커다란 구덩이로 몰아넣고 만다. 사랑이라 믿었던 주홍도 해영을 이용하여 과거를 지우려 했던 것이다.

‘사람의 욕망에는 바닥이 없다. 그것은 대부분 무섭도록 적막한 심연으로 이어져 있다. 어느 생명체 하나 숨 쉬고 있지 않은 검은 빛의 공간. 무엇 때문에, 라고 묻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다. 욕망이 추구하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욕망이다. 두 개의 거울이 마주 보고 있을 때 그 속으로 이어지는 끝없는 계단 같은 것.’ p.133~ 134

누구의 잘못이라 해야 할까.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추억을 공유하며 함께 인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그들의 삶을 파괴한 건, 그들 스스로의 욕망은 아니었을까. 살인사건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이용해 인간의 욕망과 관계를 그려낸 『앤』은 신선하면서도 뭔가 아쉽다. 그건 아마도 전아리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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