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산문집 '은희경과 쌩얼 만남'
첫 산문집 '은희경과 쌩얼 만남'
  • 김현태기자
  • 승인 2011.12.04 20: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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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힐' 신은 사연에서 작품 뒷 얘기까지

 

 

[북데일리] 은희경의 산문집이 나왔다. <생각의 일요일들>(달. 2011)이 그것이다. 책 제목 ‘생각의 일요일들’에는 이유가 있다. 일요일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의 치열한 삶의 자세와 무게를 내려놓고 편히 쉬는 날이다. 그런 날, 우리는 퉁퉁 부은 얼굴이나 헝클어진 머리인 채로 뒹굴거나 모자를 푹 눌러쓰고 편의점에 가기도 한다.

‘오늘 연재 100회예요! 지금의 내 기분 아무에게도 말해주지 않을 거예요. 이제 샤워하고 화장하고 숏팬츠에 킬힐 신고서 어디론가 놀러나갈 거예요!‘ 259쪽

킬힐 이야기가 뜻밖이다. 청바지와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는 은희경은 12센티미터 짜리 킬힐을 구비해 두고 있다. 킬힐은 신고 싶은 욕망이나 만족감만큼 대가를 치러야 하는 법. ’언덕과 계단을 오르내리며 성한 몸으로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를 걱정‘하면서도 킬힐을 신는다. 그러면서 킬힐이 좋은 이유를 다음처럼 재치있게 전했다.

‘킬힐이 좋은 이유는 그걸 신었던 다음날 제일 잘 알 수 있어요. 낡은 청바지 아래 발에 익숙한 운동화를 신고 현관문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을 때, 그 순간 발바닥으로부터 가슴으로 전해져오는 자유로움과 활기와 가벼움과 해방감이란! 이 맛에 킬힐을 ’안‘신는구나!’

은희경이란 이름에서 연상되는 단어는 ‘발랄‘이 아닐까 싶다. 작품이 아닌, 방송이나 낭독회를 통해서 보여지는 모습이 그렇다. 그 선입견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작가는 책을 통해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스케치 하듯 드러낸다.

‘아침에 일어나 맨 먼저 하는 일은 창문의 블라인드를 여는 것이다. 아울러 날씨를 살피고 시계를 보고 떠오르는 얼굴들에게 인사한다. ‘천천히 실내를 채우기 시작하는 푸르스름한 아침 기운 속에서 핸드밀로 느릿느릿 커피콩을 갈 때 마른 열매가 으깨지는 소리, 퍼져가는 향기. 그 고즈넉함 속에 잠깐 차분해지기, 문득 고개를 돌려 내 그림자를 바라보는 짧은 순간.’

소소한 읽을거리가 많다. 소설 쓰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며 문장론, 혹은 썼던 작품에 대한 뒷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한 예로 그녀는 새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에 꼭 하는 일이 두 가지 있다. 집 떠나 새로운 공간을 찾는 일과 손톱 깍기. 후자의 버릇은 손톱이 길면 자판을 치지 못하기 때문. 그로 인해 그녀의 손톱을 보면 그녀의 상태가 ‘온’인지 ‘오프’인지 알 수 있다.

읽고 나면 작가가 누리는 호사스러움에 질투를 느낄 수도 있겠다. 작가가 되면 뭐가 달라지는가.

‘봄날이었다. 나는 오렌지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지. 행사가 끝난 다음날 선생님께서 아침밥을 먹자고 부르셨다. 박완서 선생님과 오정희 선생님이 와 계셨고, 햇살이 비쳐드는 선생님 댁의 아침밥상에서 세 분의 대선배가 나누시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랬다. 정말 이것이 현실일까. 그렇구나. 꿈이 아니야. 내가 작가가 된 거야. 아아!’ 199쪽

이 번 책은 작가의 첫 산문집이다. 책 속에는 ‘비밀번호를 바꿨다. 다른 암호로 열리고 싶어졌다.’(169쪽)는 내용이 등장한다. 소설만 쓰던 그녀가 산문을 통해 속내를 처음으로, 자세하게 밝힌 셈이다. 암호가 풀리고 문이 열리면 독자들은 맨낯의 그녀와 만날 수 있다.

화이트페이퍼, WHITE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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