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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에서 줄타기
 정보화
 2008-06-08 09:23:32  |   조회: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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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데일리]




현대한국문단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쓴다는 여성작가 전경린, 그녀의 소설 속 여자들은 매우 불안하다. 경계에 서있다고 하면 이해가 갈까. 여자 그 자체로서의 한 지점과 엄마, 아내, 또 다른 무언가의 굴레에 붙잡혀있는 한 지점. 그 사이의 희미하게 나 있는 경계선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줄타기를 하는 것 같은 불안함.

그런 불안함에 기인하는걸까, 그녀의 소설 속 여자들은 위험하다. 독을 품고 있는 듯한 위험함. 이는 자신을 갉아먹기도 하고,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갉아먹기도 하는 치명적인 독이다.

그녀의 여인들에 대해 왜 이렇게 주구장창 이야기를 풀어놓았나하면 그녀가 어른을 위해 쓴 동화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문학동네.1998)에 그 모든 것이 응축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100페이지 남짓의 짧은 이야기. 그러나 동화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 책은 너무 깊은 수렁을 안고있다.

색채 하나 없는 검은 펜화와 빈 공간만이 있을뿐인데 어느 화려한 색채의 그림보다 원색적이다. 그녀의 치명적인 독이 흘리고 간 빛깔 고운 색들 때문일까. 독은 독이기에 아름답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이 이야기도 아름답다. 달을 따라 숲을 헤매는 여인의 모습은 생채기가 나고 피가 맺힐지언정, 그 달이 비추는 아름다움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필자에게 남긴다.

"이녁을 행복하게 해 줄" 생각에 열심히 일만 하며 살아가는 정. 그런 그는 어느 날 하얗게 벗은 몸의 여자를 밟는다. 그리고 순백색 늑대 가죽을 버려둔채 여자를 집으로 데려온다. 자신의 근원을 알고싶어하는 여자,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삶을 강요하는 정과 시어머니. 그 속에서 그녀는 자신을 찾지 못한 채 정에게 몸을 맡기고, 아이를 낳고, 삶에 찌들어간다.

아, 그게 다름아닌 지금 우리네 여인들의 모습은 아닐까. 자신의 근본을 찾아가기도 전 아내, 며느리, 엄마라는 새로운 굴레를 받아들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이미 삶 속에 자신은 없고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만 살아가야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 새로운 이름은 나름의 행복을 전해주지만, 언제나 한 켠 애틋하고 저린 아픔은 찾지 못한 자신에 대한 그리움은 아닐까.

어느 날 그녀의 방문을 잠그지 않고 떠난 정이 둥그레뜬 보름달에 발길을 재촉할 때, 결국 여자는 달을 따라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만난 언니들은 늑대의 모습으로 자유로운 삶을 찾아 가자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기엔 인간의 삶이 길었던걸까, 그녀는 마지막 작별의 시간을 부탁하고.

그랬다. 누가 그랬던가. 여자는 정에 약한 동물이라고. 자신보다 우선했던 인간사에서 맺었던 정들. 결국 그녀는 자신이 아닌 또다른 삶을 견뎌내고자하고, 그리 행복해질지 알았다. 그러나 그러기에 여자의 운명은 길고도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것인가보다.

일반적으로 사회는 여우를 여자, 늑대를 남자로 칭하곤한다. 그렇기에 여자의 근원을 늑대로 돌려보내는 전경린씨의 메타포를 무심히 흘릴 수만은 없다.

여자는 어디에서 오는가. 아니, 그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남자와 달리, 우리네 세상의 많은 여인들은 누구의 부인, 누구의 엄마로 너무 오랜 삶을 살아간다. 그 시간속에서 자신이 애초에 어디에서 왔는지를 잃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일지 모른다. 오늘 여자들이여, 자신의 이름을 되내어보자. 자신의 굴레를 벗고, 휘영청 밝은 달을 따라 자신의 길을 걸어가보자. 그 끝에 무엇이 있다해도 받아들이길. 불안할지라도 두 지점의 가운데 실을 타는 삶이 더 값질지 모르니.




[시민기자 정보화 zkvmzkx@naver.com]

  

2008-06-08 09: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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