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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을 보는 두가지 재미
 꺄르르
 2008-05-21 19:26:57  |   조회: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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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데일리]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서인이 임진왜란 때 곽재우와 같은 의병장을 대거 배출하면서 정권을 잡았던 북인과 광해군을 내쫓고, 선조의 5남을 인조로 추대한 사건이다. 서인들이 내건 명분 중에 명나라의 파병요청을 거부한 것을 꼽으며 광해군의 현실적인 외교정책에 반기를 들고 친명배청 정책으로 급선회했고 그것은 참혹한 병자호란을 낳았다. 명나라를 추종하고 청나라를 배격하기 위해서는, 청나라보다 군사력이 강해야 하는데 사정은 그렇지 못했다. 정묘호란(인조 5년, 1627)에서 병자호란(인조 14년, 1636)이 있기까지 9년 동안 서인 정권은 아무런 군사적 대비 없이 친명배청의 명분만 쌓다가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



「남한산성」[학고재. 2007]읽으며 인조반정을 떠올리며 내용을 찾아봤다. 남한산성은 인조가 정묘호란 때처럼 강화도로 피신을 하려다 청의 진격을 피해 남한산성에 들어가 숨어있던 47일을 김훈의 짧고 메마른 표현으로 적은 장편소설이다. ‘칼의 노래’로 임진왜란이란 절체절명의 역사로 수많은 독자들을 끌어들인 지은이는 다시 가장 치욕적인 역사로 할 수 있는 병자호란의 현장으로 글로 길을 낸다.


결사항쟁을 고집하는 주전파 김상헌과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현실을 인정하는 주화파 최명길,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영의정 김류, 그 사이에서 번민만 거듭하는 임금 인조가 성 안에서 벌이는 말들과 그 말싸움과는 별개로 피폐해져가는 남한산성 백성들의 참담함을 지독하게 꼼꼼하게 기록한다.


남한산성 안에서 벌이는 말대결의 날카로움은 시간이 갈수록 가팔라지고 망설이며 주저하는 인조는 시간이 갈수록 앙상해진다. 여기에 남한산성을 보는 첫 번째 재미가 있다. 김훈 특유의 표현은 양 쪽에 똑같이 무게 중심을 두는 비교, 대조법을 많이 사용하면서 앙 편을 견주게 한다. 이 같은 표현처럼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남한산성을 보는 두 번째 재미는 고통스러운 치욕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위의 사대부들이 말 전쟁을 할 때 백성들은 생활전쟁을 하면서 연명을 한다. 사대부들이 벌이는 언변이 화려할수록 백성들 삶의 비극은 더 커진다. 지은이가 읽는 이에게 전하는 묵직한 치욕, 그 치욕을 되새기며 새롭게 길을 모색해보게 된다. 그저 후회스런 기억으로 두지 않고 앞날의 디딤돌로 삼으려는 작가 김훈의 쓰라린 충고를 마음에 담는다.


곁말로 몇 자 보탠다. 알다시피 인조는 후금 칸에게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바닥에 찧는다. 그리고 병자호란에 패한 대가로 세 아들(소현세자·봉림대군·인평대군)을 청나라의 인질로 보낸다. 장정일의 공부[2006. 랜덤하우스중앙]에 나오는 아래 글을 읽으며 역사의 갈림길을 생각해본다.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서 장장 9년간의 볼모 생활을 했던 소현세자는 그곳에서 국제 정세가 명분이 아닌 힘에 의해 좌우된다는 현실과, 천주교 신부와의 만남을 통해 서학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청나라의 후원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원인 모를 급서를 한다. 인조는 청나라가 자신을 폐하고 소현세자를 왕위에 세우지 않을까 하고 의심했고 서인 정권은 청나라라는 현실을 인정하는 소현세자를 저주했다. 인조에 의한 세자의 독살설은 정황과 물증이 함께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정이다. 세자 소현이 아담 샬(심양에서 만난 천주교 신부)과 교류할 때는 1644년으로 조선이 일본의 무력에 의해 개국하기 232년 전이었다. 역사에 가정법은 있을 수 없다지만 “소현세자의 개방적인 이 사고는 그야말로 조선과 일본의 운명을 뒤바꿔 놓을 수 있었다.”


[시민기자 이인 special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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