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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꺄르르
 2008-03-22 08:46:54  |   조회: 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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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데일리]퀴즈 하나 내겠습니다. 수도권 웬만한 집값은 억억 하는데 월 88만을 벌면서 앞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러면 힌트, 12년 의무교육을 받고 지금까지 책상 앞에 앉아 공부만 해도 일자리 구하기는 어렵고 사회에서는 나몰라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한국의 젊은이들이다.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잔인한 퀴즈쇼와 같다. 한국은 묻는다. 너 유명대학 나왔어? 토익 점수는? 돈 많아? 빽 있어? 외모는 뛰어나? 대답을 주저하면 망설이지 않고 숫자를 센다. 3, 2, 1 땡! 탈락. 다음은 없다.

퀴즈쇼[2007. 문학동네]는 컴퓨터네트워크 세대의 성장담이자 88만원세대의 도시생태기록이다. 퀴즈를 좋아하는 남자 주인공이 지난 1년을 회상하는 1인칭 소설로 지은이 김영하의 빼어난 입담과 생생한 도시 세태가 어우러져 400쪽이 넘는 장편이 후딱 읽힌다. 뛰어난 소설이 그렇듯 책은 무척 재미있으면서 가슴 이곳저곳을 찔러댄다.

주인공은 1980년생 고학력 백수로 빈둥대다가 유일한 혈육 할머니가 죽으면서 지고 있던 빚 때문에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나 고시원 생활을 하며 편의점 알바를 한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채팅사이트에서 퀴즈방에 들어가 퀴즈 풀며 ‘벽속에 요정’이란 아이디를 쓰는 여성을 만나고 사랑을 한다. 편의점 알바를 그만두고 고시원에서도 쫓겨난 그는 TV퀴즈쇼에 출현한 걸 기회로 지하 퀴즈쇼 세계로 들어간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먼저 젊은이들의 세태와 문화다.

고시원의 1.5평짜리 방에 들어오니 도무지 현실 같지 않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도 아니고 게다가 이렇게 좁은 방이무려 수십 개에 달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방마다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책에서

양계장 같은 저 좁은 곳에서 내일을 바라며 모여든 이들. 비정규직에 저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면서도 사회에 항의할 줄 모르는 착한 이들. 굳어진 사회구조에서 계층상승은 다 빨아먹고 버려진 막대기처럼 이제 앙상한 꿈이 되었지만 막대기에 조금 배어있는 액상과당에 코를 벌름거리는 어리석은 이들. 이 젊은이들의 고단한 세상살이가 펼쳐진다.

그리고 주인공은 요즘 젊은이들처럼 영화와 음악을 좋아한다. 익숙한 문화현상들이 나오는 이 소설은 젊은 독자와 공감대를 넓히고 윗세대 독자들에게는 젊은이들 문화에 관심을 갖도록 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밴드그룹 ‘뮤즈’의 [unintended]를 들으며 ‘코엑스 아쿠아리움’과 ’홍대거리’에서 데이트를 한다. ‘미녀는 괴로워’의 흥행을 이야기하고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권태에 나오는 여주인공에 대해 맹랑하다고 말하며 영화 ‘반지의 제왕’과 ‘번지점프를 하다’, ‘피아노’의 공통점을 맞춘다.

두 번째는 온라인 소통과 사람들 관계다. 이메일과 미니홈피, 블로그, 인터넷클럽과 카페들은 이미 생활에 파고든지 오래다. 어느새 생활에 자리 잡은 온라인 문화지만 실제로 제대로 된 평가를 하거나 여러모로 깊게 다룬 소설은 드물었다. 모르는 사람과 사람이 실시간으로 대화하며 친구와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여전히 단점을 크게 부각해서 온라인은 부당하게 폄하되었다. 주인공은 여자친구를 빼면 만나는 사람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그는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감정을 느끼고 사랑을 한다. 21세기에는 사람관계형성이 가로 45cm, 세로18cm 키보드 위에서 생성되는 걸 보여준다.


마지막 퀴즈. 어머니와 약혼자가 반대하는 직업을 가지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답은 여러분에게 맡기겠습니다. 퀴즈쇼처럼 한 가지 정답이 아니라 사람마다 여러 가지 답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사회를 꿈꿉니다. 당신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까?

내가 이 세계에서 과연 살아남을 수 있겠니?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 말 같은 말을 하고, 집 같은 집에서 잠들고, 밥 같은 밥을 먹으며 사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 - 책에서

[시민기자 이인 specialin@hanmail.net]

2008-03-22 08: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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