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안재동
 2008-03-13 14:03:12  |   조회: 734
첨부파일 : -
결코 잠들 수 없는 6·25
사회지도자급 인사 77명의 6·25 회고 에세이집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평론가이자 청다한민족문학연구소장 이유식 수필가가 6·25 테마 에세이집을 엮어냈다. 중견 또는 원로급 현역문인 77인이 쓴 생생한 6·25 체험 에세이를 담은『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문학과 현실사 刊에)가 그것이다. 

책의 머리말에서 이 수필가는 “어느 결에 6·25가 일어난지도 어언 56년이 되었다. 벌써 반세기가 지나갔으니 언뜻 역사의 지평으로 희미하게 사라지는 듯 싶기도 하고 또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 한 포성인양 과거형의 슬픈 전설이 되어 가는 듯 싶기도 하다.”고 6·25에 대한 감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아시다시피 이제 전쟁 직접 체험세대는 이미 많은 분들이 이 세상을 떠났으며, 소년이었던 간접 체험세대도 어느새 70대 전후가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6·25 민족사를 보는 시각도 다소 변질되어 가는 듯 싶고 또 한편 잊기에는 너무 비극적이었던 그 민족 최대의 수난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잊어만 가고 있는 것” 같다며 아쉬움을 피력한다. 이 책을 펴낸 동기도 바로 그 점에 있다. "지금이 바로 문학적으로나마 마지막 조명해 볼 수 있는 시기로 본다"고 이 수필가는 말한다.

이 책은 딱딱한 전쟁사, 즉 단순한 전쟁 기록물이 아니라 전쟁을 주제로 한 문학인들의 창작 에세이집이다. 수록 작품 필자는 수필가를 비롯해 시인, 소설가 등 명망 높은 문인들이다. 문인이기도 하거니와 전·현직 장관, 국회의원, 예비역 장성, 은행장, 의사, 변호사, 교수, 교장, 시장, 고급공무원, 사업가 등 사회지도자급 인사들로서 직업 또한 다양하다. 

6·25 당시의 회고라면 회고랄까 자서전 성격의 생생한 전쟁기록 문학이랄 수도 있는 360여 쪽의 두툼한 분량의 이 책에는 77편의 작품이 제1부~제3부로 나뉘어 담겨 있다. 제1부에는 ‘내가 겪은 6.25’에 <나의 6.25소설>(이호철), <수난의 뒤안길>(김일두), <생지옥 같은 그 체험>(박상택) 외 23편, 제2부에는 ‘내가 본 6·25’에 <내가 본 6·25 참상>(고동주), <그날의 증언>(김수년), <동란의 잔광(殘光)>(이은방) 외 27편, 제3부에는 ‘역사의 아픔, 민족의 아픔’에 <아! 민족의 한 6·25>(김석영), <두 장편에 소설화 해 본 민족 비극>(이길융), <내 작품 속의 6·25 증언>(소진섭) 외 18 편 등이 수록되었다.

몇 편의 작품 중 일부 대목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적군(대한민국 국군)도 아니고 치안을 맡았던 경찰을 아무런 절차없이 군중이 보는 앞에서 총살을 한 처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참혹한 전쟁이 인간을 비정한 기계로 만든다지만 한 사람의 귀중한 생명을 장난치듯 뺏고 유유히 사라진 그 인민군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명희, <내가 만난 세 사람의 인민군> 부분

20세기의 세기말적 새 역사가 가져 온 우리들의 신랄한 비극 하나인 ‘6.25전쟁’이 쌤통 같은 빗돌(碑石)이 되어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쩌면 정동(丁東)이 되어 마냥 이명(耳鳴)한다.(중략) 55년 전의 6.25의 그 정동(丁東). 오늘도 앵하고 매가리 없는 메아리 되어 아리아(aria)처럼 수련히 파동친다. 힘없고 돈없었던 약소국민의 비애를 떠올려 보며 언젠가는 힘센 나라 힘센 국민이 한번 되어 보았으면 한다.
-김구봉, <돈없고 힘없던 민족의 비애> 부분

외가댁 어른들과 부산까지 피난갔다가 수복 후 서울에 돌아와 보니 당시 정부의 고급관리였던 아버지는 북으로 납치되어 끌려간 채 생사가 불명한 상태였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식이 없으니 필경 북한군에 의하여 숙청당했으리라 짐작된다. 이렇게 아버지 잃은 어머니와 그 슬하의 우리 8남매(내가 장남)의 고생이 시작되어 모진 세월을 겪어왔다. 지금도 6.25 전쟁의 처참한 기억과 그 후에 겪은 고통스러운 생활은 꿈에서도 나를 괴롭힌다.
-홍세표, <꿈에서도 나를 괴롭히는 체험> 부분

피난민들이 급한 소리를 하면서 떼를 지어서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한번 북진명령만 내리면 점심은 평양에서 먹고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장담하던 우리 국군의 막강한 힘만 믿고 설마 여기까지는 어떠랴 싶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어떤 젊은 피난민이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비웃듯이 내뱉고 간 말이 심상치 않게 들렸던 것이다. ‘서울은 이미 인민공화국이 되었는데 무엇을 꾸물거리느냐?’고. 그말을 듣고 나서 정신이 펄쩍 나서 짐을 정리하고 피난 보따리를 꾸리느라고 허둥댔던 것이다.
-원종린, <6·25동란의 회상> 부분

경찰이 후퇴한 후의 이 섬은 사실상 포기된 상태에 있었으므로 이미 인민군이 상륙한 것으로 판단한 아군기가 면사무소 창고를 폭격한다고 투하한 폭탄이 그 창고에는 명중되지 않고 그 면사무소 바로 옆에 있는 우리집 대문간에 명중 폭발되고 만 것이다. 이때에 집에 있었던 가족의 혼비백산은 말할 것도 없고 조모님과 모친의 중상 등 온가족이 부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소(牛)까지도 피투성이가 된 것이다. 평산 뒷산에서 은신 중 이 소식을 듣고 집으로 뛰어와서 이 부상된 가족들을 어디에다 안와(安臥) 치료케 할 것인가 하고 당황하고 있던 중 어느 사이에 인민군은 상륙을 하여 고향 집 마을 경찰지서에 총을 쏘면서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부락 거리에 도망가던 청년들도 그들의 총알에 맞아 쓰러져 가고 있었다.
-김일두, <수난의 뒤안길> 부분

이렇게 하여 6·25전쟁 당시 인민군 치하 3개월 가운데 전반 1개월은 서울에서, 후반 2개월을 강릉에서 겪으면서 갖은 전쟁의 참상을 보았다. 시가전, 수많은 주검들, 폐허가 된 도시, 이 가운데 버텨나가는 처절하고 치열한 이웃들의 삶을 보았다. 10월 16일에 있었던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한 강릉 재습사건, 1.4후퇴와 수복. 어린 내 눈으로 직접 목격한 광경들은 머리 소속에 각인 되어 그 그림자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다. 6.25전쟁은 어떤 이유로도 그것을 미화시켜서는 안 된다. 분단된 민족의 통일을 위한 ‘통일전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어떤 논리에도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그 많은 죽음들, 참혹한 실상들을 내 눈으로 직접 목도했기 때문이다. 어떤 정당한 의도에서라도 이 같은 피의 대가는 있을 수 없다.
-이기서, <아, 어찌 잊으랴> 부분

앞서 언급한 바대로, 이 책에 담긴 작품들은 한 마디로 6·25 체험 세대의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생생한 목소리요, 일기적인 생활 기록 그 자체이다. 

우린 때론 과거의 일을 너무 쉽게 망각하고 또 때론 현재의 상황과 너무 빨리 타협하기도 한다. 그 누가 말했던가?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말을……. “이데올로기적 냉전시대도 이젠 다 끝났다.”고 말하는 이 들도 있다. 그래서 이젠 자꾸만 과거의 일, 특히 6·25와 같은 일을 들추지 말자고도 한다.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논리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의 정치적 상황이 어떻게 변했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세대간의 의식 변화가 어떤 형태로 진행이 되었건, 6·25를 ‘하나의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뿐’ 또는 ‘한 때 좀 심각했던 일련의 사건 중 하나’로만 돌리기엔 너무 가슴 아픈 사람들도 많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이 책에 온전히 담겨 있다.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이 나라 대표적 문인들이 쓴 거짓 없는 자서전적 에세이다.




시민기자 안재동  poet@hanmail.net




2008-03-13 1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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